so & so


캘러니야 대학교에서 내가 정말 힘들어하며 가르쳤었던 "한국의 역사와 문화" 수업.
특히 고려史 부분은 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안 가르쳐야 되는지 몰라서
그냥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어려웠었다.
(코이카 단원들은 농담처럼 중도귀국, 중도귀국 하지만 그때 그 고비가 넘기 어려워서
1년 가까이 옆방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짐가방을 살포시 침실에 가져다 놓고 정말 귀국해야하나 고민했을 정도다.)

아까 저녁 때 남부터미널에서 내가 가르쳤던 스리랑카 학생을 만났다.
이번 3월에 배재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과' 신입생이 되는 그녀는 내가 가르친 걸 많이도 기억하고 있었다.
에밀레종, 이순신, 한석봉,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자신도 그게 지금 기억이 다 나는 게 신기하다며 종알종알 떠드는 그녀를 보며, 이런 게 가르치는 즐거움이구나 하고 느꼈다.

어려운 역사는 포기하고 野史(?) 중심으로 나중에 한국 사람과의 대화에 끼어들거나, 문학 작품을 만날 때 '아하, 이거였구나'하는 정도만 되면 고맙다고
생각하고 가르쳤는데, 이 학생은 그걸 충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스리랑카의 수많은 부임지 중에서도 이런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고, 한국에서도 학생을 계속 만날 수 있는 캘러니야大에 배치받은 게 얼마나 복인지 모르겠다.
정말정말 어렵게 성취한 것은 진실로 나중에 큰 기쁨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수업은 정말 기억에 남는다.
한국어과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된 학생들을 처음 만난 나는 그 학생들의 수준을 몰랐다. 그래서 그냥 한국어와 싱할러로 된 수업 자료를 준비했다.
단군 신화부터 시작했는데, 나름 이 자료 정도면 이해하겠지 싶었는데, 학생들의 표정은 정말이지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는 듯 했다.
'저게 뭔 소리야'하는 잔뜩 찌푸린 표정과 거듭되는 질문들.
단군신화 영어 버전을 구해서 handout을 만들어봤지만 오히려 한글 버전보다 이해도가 더 떨어져서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백제,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역사도 흐르고 시간도 흐르면서
학생들이 내 수업 방식을 이해하게 되고, 서로가 수업을 즐기게 되었다.
학기 초기의 멍하고 짜증난 표정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환한 미소로 변해가던 학생들의 얼굴을 정말 잊지 못 한다.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던 신입생 수업도 어려웠던만큼 기억에 남는다.
1학년 70명을 방음도 냉방도 되지 않는 교실에서 세 번 분반을 해서 힘들게 가르쳤다.
영어나 싱할러로 강의해야 하는 게 벽에 부딪힐 때도 있었다.
스리랑카인 강사가 나머지 1학년 수업을 전담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일주일에 한 시간만 만나면 되었는데도 1학년 수업을 앞두면 도망가고 싶을 만큼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1년을 마치고 나의 마지막 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정성스런 선물을 준비했고, 내가 그들에게 너무 미안할 정도로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렵게 어렵게 성취한 일들이 나중에 얼마나 큰 기쁨으로 남는지 배웠다.

그냥 짧은 일과를 쓰려고 했던 글이 길어졌다.
이 글은 원래 지금 기분을 나타내려고 시작했는데...
지금 기분은 짜증 만빵이야!
Hp 복합기! 왜 이렇게 예민한 거냐구!
프린터 되다가 안 되다가 스캐너 되다가 안 되다가 복사기도 아예 미동도 안 하고.
대체 얘는 뭐가 불만인 건지 모르겠다.
수십 분 동안 "예, 아니오, 다음, 뒤로"가 반복되는 문제 해결 창을 띄워 놓고 씨름했지만 대체 뭐가 문제인지 걸려 나오지도 않는다.

매일매일 짜증을 불러오는 "hp 복합말썽기"
지금 프린트 하고 싶은 게 있단 말이야!
인생 예찬에서 분노 폭발로 이어지는 요상한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