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가을에 구입했던 스와치 손목 시계.
밴드가 신축성 있게 늘어나는 형식이라, 착용도 간편하고
오래 되어 투명 플라스틱 부분이 누렇게 변했지만 얼마 전까지도 "어, 언니 시계 예쁘다!" 라는 소리를 듣던 늙은 시계.
중간에 몇 년간 건전지가 수명을 다해 멎은 상태로 내버려 두기도 해서 만 16년을 내내 함께 한 것은 아니지만
착용의 편리성 때문에 몇 년전부터 다시금 애용하는 시계다.
특히, 금속 물건을 모두 빼놓아야 하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 편해서 좋다.
그래서 여행갈 때도 자주 동반.
그러다가...
남들에게 뭐라 말하기도 부끄러운(?) 어떤 사태 때문에 이 시계와 16년 반 만에 작별할 뻔 했다.
어떤 비빔라면을 먹다가 소스가 맛있어서 다음에 다른 곳에 이용할 생각으로 책상 위 소지품 박스에 잠깐 넣어두었다. 그런데 그 소스가 흘러내리면서 그 박스 안 물체들을 덮쳤다.
다른 것은 다 닦으면 되니 괜찮은데, 뜨아아악...
소스 안에 이 시계가 풍덩 빠져 있었다.
물티슈로 여러 번 닦다가, 결국은 세면대에서 흐르는 물로 씻어냈다. 생활 방수정도는 되니까.
하지만 결국 뒷면에 건전지가 들어가는 부분 틈새에는 붉으죽죽한 흔적이 남았다.
이 소스들이 그 부분을 통해 시계 내부로 흘러들어갈까봐 걱정 되었다.
하지만 시계는 잘 간다. 그래도 내부 청소를 한 번 했으면 좋겠는데, 그냥 집에서는 전지를 빼낼 수 없기 때문에 스와치 판매처에 가봐야 한다.
디큐브 현대백화점 가는 길에 시계 매장에 들러봤더니, 스와치는 없댄다.
시계가 다 비슷하겠지 뭐 하고선, 염치 불고하고... "저기....시계를 고추장 소스에 빠트려서..."하고 시계 뒷면을 보여줬더니, 스와치 시계의 전지 부분을 여는 도구는 따로 있다고 한다. 영등포 백화점에 가보라고 조언해준다.
(# 나도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염치 불고'가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염치 불구...라고 썼다가 고침)
며칠 뒤, 영등포 신세계에 갔다가 A관 지하2층에서 어렵게 스와치 매장을 찾았다. ( 2016년 기준, B관으로 가는 통로 근처에 있음). 직원도 전지를 빼내 보곤, "어이구~~" 하더니 내부를 닦아 준다.
"아, 그런데 시계가 안 가는데요."
"네? 잘 갔는데.... 아까 오후 3시 정도까지 확인했는데??"
"이미 내부 단자가 상해서..."
"아 그런가요 ㅠ.ㅠ"
"수리 안 되는 거 아시죠? 대신에 스와치 옛 시계를 가지고 오시고 스와치를 새로 구입하시면 10% 할인을 해드립니다."
"네......"
황망하게 매장을 빠져나왔다.
허허
무슨 라면 소스 재활용하겠다고 16년 아껴온 시계를 망가지게 하다니...
백화점 밖으로 나와서 전지 부분을 꾸욱 눌러봤다.
이렇게 헤어지다니....
엥?
그런데 시계 잘 간다.
직원이 고추장에 물든 내부 상태를 보고 작동이 안 될 것이라 지레 판단하고는 대충 전지를 끼워줬나 보다.
생각보다 생명력이 길구나...스와치.
다시 돌아와서 다행이야.
앞으로는 좀 더 아껴줄게.
내 성격상 분명히 집 어딘가에는 보증서가 들어있는 박스도 있어서 자세한 이름을 알 수 있을 텐데, 일단 시계만 확대해서 보면 이런 번호가 있다. 하지만 고유 모델명은 아닌 듯? AG1997하면 굉장히 여러 시계가 검색되어 나온다.
이 시계는 2017년 들어서니, 더 이상 잘 가지 않는다. 계속 느려진다. 아마도 이젠 드디어 수명을 다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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