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난 뒤




아빠가 돌아가신지 벌써 9년이 넘었다.
나는 아빠가 쓰시던 전화 번호를 받아서 아직 쓰고 있다.
011 - 이 번호로는 스마트폰 개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화기도  낡았다.

요즘 나는 그냥 다른 태블릿으로 카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저를 하지,  통화를 할 일은 그다지 없기 때문에 2G폰, 피처폰이라고들 하는 전화기를 6년째 쓰고 있었다.

며칠 전에 책상 위에 물을 쏟았는데, 그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전화기를 정말 쓸 일이 없기 때문에 다음날까지도 전화기가 물에 젖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6년 된 전화기는 그렇게 사망.


이참에 그냥 스마트폰으로 갈아탈까 생각해보니, 그래도 여태까지 지켜온 번호가 아깝다.
게다가 바로 얼마 전에 내 번호로 아버지 친구 분이 카톡을 보내셨었다. 아마 엄마가 이 번호를 쓰겠거니 하고 짐작을 하셨는지, 엄마에 대한 안부 인사를 아주 오랜 만에 내 번호로 연결된 카톡으로 보내신 것이었다. 이렇다 보니, 이 오랜 번호를 해지 하기가 점점 더 싫어진다.


일단 서비스센터에 가서 1달간 무료로 쓸 수 있는 임대폰으로 다시 폰을 개통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잠을 자는데, 꿈에 아빠가 나왔다.

꿈을 꿀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한 상황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아빠가 돌아가신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빠는 내 옆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빠와 이야기 했다.

"아빠, 이렇게 죽은지 몇 년이 지나도 아빠 친구가 아빠를 기억하고 연락이 왔어. 이 내용 읽어줄까?"

나는 내용을 읽어 드렸고 (꿈속 그 내용은 실제로 받은 카톡 내용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꿈 속에서 망자이자 동시에 생존자였던 아빠는 그 내용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이 글을 읽어드려야 한다'라는 내 정신 활동이 작용을 했기 때문에 내가 꿈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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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 카톡으로 연락이 왔었던 그 아빠 친구분은, 9년 전에 아빠가 말기암 통증에 지쳐서 '그냥 죽고 싶다' 하셨을 때 문병을 오셨다가 '네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라면 곡기를 끊어라'하고 충고하고 가셨던 분이다.

아빠가 '차라리 죽고 싶다' 하셨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당연히 만류했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그것일 때 차라리 저렇게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너무 고마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우리 아빠는 그 친구의 충고를 받아들여 병원에서 제공된 식사를 한 끼 정도 거부하셨지만 이내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몇 주를 더 살다가 가셨다.



꿈에서 깨어 생각했다.
내가 죽은 뒤에도, 내 친구들이 나를 기억해줄까.
9년이 지나도 나의 남은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할 친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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