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기




엄마가 지금 친구분이랑 단체 패키지로 영국 여행 중이시다.
일정표를 보니 지금쯤이면 벨파스트에서 저녁을 드시거나 호텔에 들어가셨을 듯.

내가 3년 전 영국에 갔을 때
호텔 근처 Tesco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그냥 여행중 대비용으로 종합 감기약 하나를 샀었는데,
약효도 좋았고 한국에 비해 상당히 저렴했다. 영국은 모든 물가가 비싸도, 식료품과 약값은 더 싸다는 게 확실히 선진국처럼 느껴졌다.

엄마에게 시간 여유 있으면 감기약이나 사오라고 카톡을 보내니, "수퍼마켓은 구경도 못함. 자연 경관 보며 힐링 중"이라는 답변만 왔다 ㅎㅎ.

여행사 일정표에서 오늘 숙박 예정이라는 벨파스트 호텔 주소를 검색하니, 도보 5분 거리에 Tesco express가 있다. 나는 여행 가면 명승지(?)보다 수퍼마켓 둘러보는 것을 상당히 좋아한다. 어휴...나같으면 구글 지도 보면서 저녁 자유 시간대에 당장 다녀올텐데. 엄마는 어차피 지도도 볼 줄 모르시니 카톡으로 길 설명해서 수퍼마켓 갔다오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그냥 포기.

나이가 든다는 건 뭔가 서글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에 둔해지고, 새로운 문물과 멀어지고....

예전 엄마랑 같이 미국 여행했을 때부터 많이 힘들었던 일인데...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가 3G/LTE와 wi-fi간 차이와 그 설정 방법을 이해를 못 하셨다.
집안에서 늘 켜져있는 와이파이...밖으로 나가면 자동으로 변환되는 LTE, 엄마는 모든 것이 그냥 되는 줄 아시나보다.



'어휴, 우리 엄마...그저 모든 게 다 저절로 되는 줄 알지. 내가 못 살어'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엄마가 늙고 내가 젊어서 이런 생각을 하지만
엄마가 젊고 내가 어렸을 적...
나 역시 그땐 그저 모든 게 다 저절로 되는 줄 알고 살았다는 거.


아침에 눈 뜨면 준비되어있던 도시락, 빳빳하게 다려진 교복
누군가는 늘 비워놓았던 화장실 쓰레기통
매일매일의 반찬, 식사, 빨래, 청소.
그 모든 게 다 저절로 되는 줄 알고 살았던 어린 시절.
이렇게 다 컸다고 이제 늙으신 엄마가 전자기기 못 다루시는 거 뒤에서 짜증이나 내고.



나이 드는 것은 참 오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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