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고양이에게 먹을 거리를 주기 위해 나선 길.
하지만 동네를 돌아다녀도 경계심 많은 길고양이에게 뭔가를 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손에 먹을 걸 들지 않았을 때는 꼭 고양이를 마주치지만 이상하게도 먹을 걸 들고 나가면 고양이가 한 마리도 안 보이곤 했다.
작년에 우리 동네 건너편에 재개발이 시작되어 집을 다 비우고 이주가 시작됐는데, 어떤 빈집 한켠에 길고양이 쉼터와 급식소가 마련된 것을 봤다.
며칠 전에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좀 남았는데, 이제는 돌아다니지 않아도 그 급식소에 내려놓고 오면 되겠지....하고는 집을 나섰다. 그런데....
급식소가 있던 대문 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아직 제대로 공사 시작한 건 아닌 거 같은데... 고양이 몰려든다며 주민이 싫어해서 저 부분만 일부러 부순 건지... 쩝.
다음날 우리 동네에서 10분 이상 더 걸어가면 더 제대로 마련된 고양이 급식소가 있던 게 기억나서 거기로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그곳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붕을 만들어놓은 작은 공간에 건식 사료가 가득 들어있었고, 옆쪽에 작은 투명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나처럼 사료 외에 다른 음식도 주고 싶은 사람이 또 있었나봐. 여기에 먹을 거 넣어놔야지."하고 서서 그 통에 주르르 부었는데...
헉! 그것은 고양이 물통이었다.
서서 내려다봐서 투명한 물이 제대로 안 보인 것이었다. 물 위에 음식이 동동 떴다;;;;;;
으헉! 이를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고양이들이 생선 이상으로 좋아하는 게 동물성 음식이란 걸 아는데...지들이 알아서 걷어먹지 않을까.
자리를 떠나 길을 가다가 결국 되돌아섰다.
이 길고양이 급식소를 관리해오신 누군지 모를 분에게 누가 되는 것 같아서.
결국 손으로 하나하나 덩어리를 받아서 건저내며 물을 쏟아서 버렸다. 내가 음식을 담아갔던 봉지를 땅에 깔고 그 위에 얹어놓았다. 그 옆에는 누구든 물이 떨어지면 추가해서 주라는 의미인지 2리터 짜리 생수병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새로 물을 부어놓고 일어섰다.
물을 쏟아내며 느낀 건데 물이 참 맑았다. 진짜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급식소인 듯.
사람들이 길고양이에게 음식만 주려고 애쓰지만, 사실 길고양이에게 굉장히 필요한 것은 깨끗한 물이라고 한다. 나는 아무리 선의였다지만 거기에 음식을 쏟아부었으니;;;;
다행히 근처에 몇 번 들어가본 적 있는 익숙한 건물이 있어서 1층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을 수 있었다. 비밀번호 등으로 잡상인 출입을 막는 화장실도 많아서 걱정했지만 비번도 없고 깨끗했다.
🐈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동네 주민도 많다고 해서 재빨리 돼지 먹을 거리를 통에 쏟고 사라지려다, 그것들이 물통에 동동 뜨던 순간의 난감함은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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