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무조건 이중전공을 해야 했다.
그래서 보통 우리 학부 학생들은 "안녕하세요. 영문/심리 전공 @@@입니다." "노문/사회 전공 @@@" "독문/철학 전공" 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소개를 하곤 했다.
학부 친구가 같은 학교 공대 출신과 결혼을 하게 됐는데 문과대와 공대 동기들이 주르르 식당에 모여 청첩장을 건네받던 날, 우리 문과대 친구들이 모두 본인을 "영문/사회, 국문/심리, 철학/사학..." 이런 식으로 소개했다. 그랬더니 그 공대생 예비신랑이 놀라면서 "어? 나는 여태까지 우리 여친이 똑똑해서 이중 전공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두 하는 거였네?" 🤣 이랬던 적도 있다.
아무튼, 학교 정책에 따라서 나는 영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했고, 전공으로 인정받기 위해 요구하는 필수 수강 학점 단위가 매우 적은 수라서 전문성은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둘다 매우 사랑하는 전공이다.
어중이 떠중이(?) 그냥 가장 유명한 과라서 전공자가 많았던 영문과는 상대적으로 학점을 받기 쉬웠지만, 대학원 진학까지 목표로 하는 야심찬 여학생(통상적으로 여학생이 좀 더 열심히 공부한다)이 많았던 심리학과는 성적을 잘 받기가 좀 어려웠다. 내 대학 때 절친 중에 두 명이나 심리학 박사를 취득해 교수가 됐는데, 학부 시절 그들과 나의 성적은 하늘과 땅 차이 ㅎㅎㅎ.
그래도 성적이 잘 나오던 과목은 내가 흥미있어 하던 이상심리학, 건강심리학 이런 부류였다. 지금도 관심이 많다. 건강심리학 교과서는 영어로 되어있었는데, 다른 건 다 잊어도 myocardial infarction 이 단어는 잊혀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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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활하다가 마주치는, 특히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많이 보는데.... 이들은 알고 보면 성격 장애 (personality disorder)를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름 심리학 전공했다고 하는 나조차도 당하기만 하다가 나중에야 자료를 찾아보게 되는데,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하던 종류의 행동도 나중에 보면 교과서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사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뒤늦게 깨달으면 퍼즐이 하나씩 맞아들어 가는....
기억에 남는 성격장애자가 두어 명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만난지 석 달 이내에 내가 증상을 짐작한 경우였다. 근처에서 엮일 일이 많아서 힘들어 했더니 정신과 의사인 아는 동생이 "언니, 그런 사람은 그냥 버리세요.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라고 단호히 충고해주기도 했다.
성격장애자는 보통 본인은 본인의 병을 모르고 주위 사람만 괴로운 경우가 많다. 성격 장애에는 여러 하위 분류가 있는데, 일부 성격 장애자는 본인은 멀쩡하고 왜 자기가 병자인지 모르지만 오히려 주위 사람이 참다 참다 홧병이 나서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할 정도.
살다 보니, 제일 대처하기 어려운 경우가 '증상의 서서한 발현'이었다. 몇몇 성격 장애 중에 성인 시기를 거치면서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를 겪어 보니, 차라리 예전에 3개월 만에 이상한 것 깨닫고 거리를 두게 했던 성격장애자들은 양반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경우에 주위 사람이 더 고통받는다.
내가 아는 그애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면서, 뭔가 현재의 찜찜한 행동에도 갸웃거리면서도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면 먼 길을 와 있다. 예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닌, 이상한 괴물이 내 옆에 서 있는 것이다.
웬만한 관계라면 그냥 끊어버릴 텐데, 결혼을 했을 경우 또는 내 아이의 부모일 경우....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이상성격자에게 질질 끌려갈 수 밖에 없게 되기도 한다.
우울증 같은 것을 상담 받으러 정신과에 가보면 약 처방만 열심히 해줘서 상처 받고 돌아오는 사람도 많다던데, 우울증은 약 처방이 있고 본인이 괴로운 병이다. 하지만 성격 장애는 약이 없고 본인이 그 장애를 잘 모르기 때문에 고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드물어서 타인이 괴롭다.
뭐가 뭔지 몰라서, 주위 사람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정말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서서히 증상이 악화하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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