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게 이상해



한때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남주/여주를 맡던 사랑스런 배우들도 40대가 넘어가면 순식간에 조연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자기가 하던 남우주연/여우주연의 아빠-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주인공만 고집하다가 30대 후반기를 잘못 보내면 결국엔 역할이 더 줄어들게 되어 휴직 상태가 되므로, 생각보다 더 이른 나이에 주연의 엄마-아빠 역으로 넘어가서 조연에 안착하는 배우들을 많이 봤다. 실제로는 중고생 자녀가 있을 수 없는 나이인데도 이미 중고생의 부모로 등장하는...


누구 엄마, 누구 아내 역이 아닌
40대 이상의 여성이 단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드라마가 몇몇 존재한다는 사실은 다행이다.

하지만 그 주연 배우가 인터뷰할 때마다 "이 역을 하기 위해 물도 안 마시고 살을 뺐다." 를 몇 번씩 강조했던 것은 아쉬웠다. 또다른 배우는 드라마상에서 집에 들어와서 쉴 때조차도 너무나도 외출복같은 예쁜 옷을 입고 우아하게 나타난다. 연기력 외에도 "와, 저 배우 저 나이에 몸매 관리 잘했다." "와, 저 옷 어디 거야? 예쁘다" 이것으로도 화제를 끌어야한다는 게 아쉽다. 여자는 능력 말고도 외모/차림새로도 인정을 받아야 해서.


최근의 한 드라마도 "능력있어서 너무 바쁜 의사 엄마 + 무능력하지만 자신과 잘 놀아준 아빠" - 구도가 등장하면서, 부부가 이혼 위기에 처했을 때 아들이 아빠에게 더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아들과 같이 보낸 시간이 짧아서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거 뭔지도 잘 모르잖아!" 소리를 아들에게 듣고 마음 아파하는 엄마가, 매일매일 바뀌는 화려한 패션의 세계를 선보인다. 대체 매일 바뀌는 저런 옷/구두/장신구 다 색깔 맞춰 다 구입할 시간은 있는데, 아들이랑 놀아줄 시간은 없는 엄마란 말인가. 정말 바쁘고 능력있는 의료인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사람들이 잘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퍼스널 쇼퍼'가 따로 있다고 해도 그 옷들 '컨펌'할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을라나...아들이 뭘 좋아하는지는 모를 정도로 바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옷 챙겨입는 거 하나는 확실한 엄마. 누군가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잖아?' 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여자 = 늘 옷에 신경을 써야하는 사람'인 걸까?


그리고 새벽에도, 한밤에도, 금방 외출할 수 있을 듯한 완벽한 차림새를 집에서 하고 있다. 어떤 아침 장면에서는 꽤나 외출복다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도 "엄마는 이제 출근 준비할게"하더니, 또 다른 옷을 갈아 입고 나온다. 연기력만으로는 안 되고, 입고 나오는 옷과 몸매 관리로도 이목을 끌어야하는 게 '여'배우의 숙명인지.... 

'가정사'로 출근 시간에 무단 지각을 해서 황급하게 나타나는 상황에도, 여배우는 역시나 "색깔맞춤"을 한 완벽한 옷차림을 선보인다. 기다리는 환자들은 생각 안 하고 옷만 고르고 있던 사람으로 보인다. 여기서라도 좀 더 다급하게 나타난 모습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늘 신던 하이힐 대신에 '스니커즈'라도 신고 내달려서 나타난다든지 하는....배우나 그 스태프나 영리하진 않은 것 같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신제품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검은 스웨터와 청바지 차림으로 시선을 모았다. 마크 저커버그는 똑같은 티셔츠와 바지가 수십 벌이 있다고 하며, 옷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갑부 청년의 무심함과 소탈함으로 화제를 모았다.

어떤 외국 기사에서 이런 글을 본 기억이 난다. 다들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의 실용성은 칭찬하지만, 그런 기업의 셰릴 샌드버그 같은 여성 대표가 프리젠테이션에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나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절대 같은 잣대로 평가되지 않는다고.

아들과 사이가 소원할 정도로 바쁜 능력자 엄마도,
그래서 매일매일 아름다운 옷으로 시선을 끌고 타인의 부러움을 사야 하나보다.

'모든 게 완벽히 행복한 줄 알았던 성공한 여자, 그녀에게 갑자기 일어난......'으로 드라마의 전제가 시작될 때, 그 여자가 통통하거나 빌 게이츠처럼 푸근하게 스웨터에 면바지 차림으로 다녀서는 '성공'한 여성으로 부러움을 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무조건 옷은 수백벌이 있어야 하고, 그 옷에 맞게 늘씬해야 한다. 그래서 몇년 전 어떤 드라마에서도 주연을 맡은 여성이 인터뷰때마다 체중 감량을 강조했었나보다.


50대에도 아름다움을 유지해서 칭송받는 여배우들이 사회 생활 장면에서는 최고의 매력을 유지하더라도 (마크 저커버그가 아니니, 청바지 입고 회사에 나갈 수 없다) 집에서 쉬는 장면에서는 좀 현실성있게 편안한 옷을 입고 나와도 되는, 그런 시선의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단독주연급 여배우가 극중에서 "무릎나온 츄리닝"을 입고 나와 양푼에 밥 비벼먹으면, "ㅇㅇㅇ 연기 변신! 대책없이 망가졌다." "ㅇㅇㅇ 에게 이런 모습이!" 같은 기사가 뜨던데..ㅡ 사실 밖에서는 칼로 베일 듯 도도한 코트-구두-장신구 합을 다 맞춰서 돌아다니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다들 무릎나온 늘어진 바지로 갈아입고 대충 챙겨먹지 않나?? 아닌가? '전문직'들은 집에서도 드레스를 입고 사는 걸까.


매일 바뀌는 옷과 구두로 '어머, 저거 브랜드 어디 꺼래?' 이 궁금증 유발시키려는 노력 그만 하고....
이젠 종종 같은 옷도 좀 입고 나오고 그랬으면 좋겠다. 
매분마다 바뀌는 옷으로 그 배우의 노력을 평가하는 건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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