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다닐 때 미국의 모대학교 중국계 교수님이 한국에서 오셔서 몇주간 속성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떠나신 적이 있다. 짧았지만 정식으로 학점이 부여되는 수업이었다.
요즘같이 유학이 흔할 때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 중국에서 학부를 마치셨는데도 그뒤 미국에 건너가서 해당 분야 북미 학회장이 되실 정도로 노력파이신 분이었는데, 솔직히 수업은 실망스럽긴 했다.
하지만 동양인(?!)들 사이에 흐르는 특유의 정인지 뭔지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로 생일 축하 정도의 연락은 주고 받고 있다.
나는 사실 '이 분이랑 그렇게 친한 관계인가?'싶어서 생일 축하를 잊어먹을 때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이분은 페이스북에 불쑥 나타나 우리 과 친구들 모두에게 생일 메시지를 날리고 사라지신다. 미국에 거주 중이시니 사실 한국보다 시간대가 더 늦는데도, 몇년째 항상 페이스북에 내 생일을 가장 먼저 축하해주는 분은 이 분인 경우가 많았다. 보통은 호주 쪽에 거주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미국보다는 차라리 유럽쪽 거주자가 먼저 생일 축하를 할 것 같은데도 말이다.
우리처럼 그냥 몇 주 스쳐지나가는 제자뿐만 아니라 실제로 석박사 과정을 통해 길러내는 제자가 아주 많을 텐데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는 게 신기하다.
게다가 그분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톈진, 내가 잠시 살았던 곳과 같았다. 그래서 내가 2019년에 톈진에 다녀온 뒤에 이분께 따로 많은 사진을 보내고 감흥을 적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분도 본인은 2018년에 이르러, 떠난지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톈진에 가보았다고 하시며 톈진은 너무 변해서 내가 두고 떠난 그곳이 아니었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오늘 그분이 생일을 맞이하셨길래, 톈진 사진을 골라서 (그분도 너무 많이 변했다고 인정한 톈진이기에, 일부러 유명한 옛 건물 사진을 골라서...) 이 도시의 추억과 함께 생일 축하를 전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 대한 안부와 함께.
얼마 뒤, 답장이 왔는데 ....
이분은 내가 보낸 사진을 서울의 풍경으로 생각하고 계신 듯 했다. 우리가 함께 한 서울의 풍경을 공유해주어 고맙다고....🙄
나는 단지 8개월 살았을 뿐인 톈진을 많이 그리워하고 그 모습이 여전히 뇌리에 박혀 있는데,
이분에겐 성인에 이르기까지 20년 넘게 거주했던 중국이지만, 중국을 떠나서 미국에서 산 세월이 두 배 정도이기 때문인지... 톈진을 많이 잊으셨나 보다. 전혀 생각나지도 않으시나봐.ㅎㅎ
역시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남이 생각하기를 기대하면 안 됨 🤗
아니면,
한국어로 썼다면 공통된 추억을 상기시키려는 내 의도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기에... 외국어로 남과 소통하는 것은 역시 더 어렵다는 예시의 하나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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