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달의 la décima 달성으로 막을 내린 로마대회는 여러모로 좋은 대회였다.
2010년대 후반 이른바 *next gen* 킬러로 통하며 떠오르는 신예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경기를 선사하던 나달이...
(이게 또 양상이 계속 변하는 것 같다. 2010년대 중반에는 나달이 처음 붙어보는 선수와 대결에 유난히 약해서 키리오스, 초리치, 샤포발로프 등의 신성 탄생 제조기 역할을 했었다. 근데 또 최근에는 그런 일이 없다)
2020년 접어들며 나이어린 선수에게 발목 잡히는 일이 다시 늘기 사작했다.
그래서 이번 클레이 시즌 내내 경기 지켜보기가 아슬아슬했는데...
로마에서는 샤포발로프의 무서운 공세도 이겨냈으며
해법이 없어보이는 3연패의 늪에 빠졌던 즈베레프와의 경기에서도 드디어 이겼고
Servebot 오펠카와의 대결에서부터는 서브 문제가 거의 사라졌다.
서브 폴트 문제는 클레이 시즌의 시작인 몬테 카를로때부터 가슴 졸이게 만들던 것인데,
바르셀로나 결승전에서 한 포인트만 더 얻으면 되는데 더블폴트로 한 세트 더 뛰게 됐을 때는 내 마음 속 깊이.... '야,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세컨드 서브는 언더암 서브라도 준비해놔라 '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바르셀로나-마드리드-로마 대회를 거치면서 서브 불안은 많이 나아졌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감탄한 게, 샤포발로프에게 매치 포인트를 두 번 잡히고도 결국 본인 승리로 가져온 것과, 즈베레프/조코비치와의 경기에서 수많은 브레이크 포인트에 이르고도 흔들림없이 결국 본인 게임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늘 한 포인트 한 포인트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가장 유명한 나달이지만, 정말 그 정신력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정말로 그는, '이 포인트 잃으면 나의 패배로 끝난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조급해지기보다는 '한 포인트만 다시 열심히 하면 경기는 이어진다' 이 생각으로 테니스를 치나보다. 그 흔들림 없는 정신력과 자신감.
fangirling 하는 사람들의 흔한 착각으로...뭔가 그 대상과 친밀감을 가지면서 우연의 일치를 운명으로 해석하는 일이 많아지게 되는데..
나는 한동안 내가 일상에서 사소한 부상을 당하거나 어딘가가 아프면 그날 나달도 동시에 부상으로 경기에 패배하는 일이 잦아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이제는 그런 착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에 요즘은 내가 경기를 안 보면 패배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것도 우연의 일치겠지만ㅋㅋ)어떻게든 경기를 꼭 보려고 노력하고, 승리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나도 정신을 가다듬는 일을 한다. ㅎㅎ
사실 올해 나달 팬들에게 충격임과 동시에 넥스트젠 - 넥젠 - 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준 경기가
호주오픈 8강전에서 나달이 2-3으로 치치파스에게 리버스 스윕패를 당한 일이다.
나는 종종 테니스를 보면서 동시에 폰으로 2048 게임을 한다. (짝수 숫자를 계속 맞춰서 큰 수를 만들어가는 게임) 테니스는 선수들의 서브 준비 동작 등 중간에 비는 시간이 많아서 그 시간 동안 초조함을 달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런데 올해 그 호주 오픈 8강전에서 1,2세트를 쉽게 가져간 나달이 갑자기 치치파스에게 실력과 체력에서 밀리기 시작하면서 3,4,5세트를 끌려가는데...나달이 매우 평범한 실력의 선수로 보이기 시작했다.
해법이 없네, 해법이 없네, 솔직히 지금은 치치파스가 우세해 보임...이 생각을 하면서 5세트 끝까지 왔는데, 갑자기 나도 무지무지 긴장이 되면서 2048 게임을 제대로 실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나달도 패배했고... 마지막에 나도 그 정도로 떨린 적은 처음이라 아직 기억한다. 차분하게 숫자 맞추기를 할 수 없었던 내 멘탈...
이번 클레이 시즌 들어서는 나달이 계속 넥젠에게 패하면서 아쉬운 순간이 많았는데
나는 계속 괜찮다 괜찮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이런 생각만 했다.
매치 포인트에 몰려서도 나 역시 '질 수도 있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먼 나라에서 홀로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나처럼 나달도 매치 포인트에 몰려서도 긴장 하나없이 결국은 그 싸움을 이겨냈다.
모든 것은 정말 너무 바라면 나에게 와주지 않는 듯.
그저 한 단계 한 단계 평온한 마음으로 이겨내다보면, 내가 원했던 그 자리에 어느새 가 있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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