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리 여행은..
6월 1일 새벽 1시 나달이 8강전에서 승리하기 전까지는 매우 울적했다. 그 8강전도 파리 시간으로 5월 31일 밤 9시에 시작했던 경기.
5월과 6월로 나뉘어서 기분이 바뀌는 여행이었구나.
울적한 이유는 표를 구할 수가 없어서.
파리 도착 다음날인 27일 경우는 필립 샤트리에 코트 낮/밤 세션을 모두 구입해 놓았으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고' 나달 경기는 수잔 렁글렌 코트로 배정되었다. 그 스케줄이 샤를드골 공항 도착 후 얼마 뒤 발표되어, 난 파리 시내 들어가기도 전에 비통함에 빠짐 😰. 수잔 렁글렌은 필립샤트리에보다 규모가 작아, 절대적인 수마저 적으니 표를 구하기가 더 어려웠다. 출발 전에 한국에서도 왠지 이날은 나달 경기가 수잔 렁글렌으로 갈 것 같아서 몇 번 체크해봤지만 대회 개막 뒤에는 resale표가 나오는 걸 못 봤다.
이번 2022 롤랑가로스 드로는 근래 최악의 불균형 드로여서... 한쪽에만 잘 하는 선수가 몰린 정도도 최악이었고 (맥빠진 결승전 보장), 대회 첫주에 월/수/금/일/ 경기를 했던 윗드로는 유명 선수 밀집으로 표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반면에 아래쪽 드로의 화/목/토/월/ 경기는 입장권이 남아돌았다.
그래서 나는 17시간 (경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고도 호텔방에서 티비로만 테니스 경기를 보는 신세가 되어 울적해졌다. 나는 8강 데이 세션, 4강, 결승 표는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8강마저 나달 경기가 나이트 세션으로 배정되면서.... 이러다 나달이 탈락이라도 하면 결국 한 경기도 직관을 못한 채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불안과도 싸워야 했다.
5월 29일 16강 경기도 표를 구하기 위해 거의 몇 시간을 공식 구매 사이트에 매달리는 노력을 해봤지만 (노력이라도 가상해서 하늘이 상을 줄까봐?) , 구동이 느린 스마트폰으로는 경쟁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의외로 시시각각 표가 한 두장씩 resale로 나오는 것은 계속 보이는데, 좌석 고를 때 스마트폰의 둔한 반응으로 '너는 이미 늦었어'라는 팝업만 실제로 십수번을 봤다. 차라리 이 화면으로까지 안 넘어갔다면 일찍 포기했을 텐데, 자꾸 resale이 나오는 것이 보이니 포기를 할 수가 없었다.
예매 사이트에서는 컴퓨터 접속을 권유한다. (" We also recommend that you use a computer rather than a smartphone or tablet on busy days") 하지만 출장도 아니고 여행 오면서 랩탑까지는...😔 안 가져옴. 호텔 1층의 컴퓨터들도 익명성을 이용한 범죄가 많았던 것인지...?!? 접속할 수 있는 자격과 접속 가능 사이트를 많이 제한하고 있어 도움이 전혀 안 됐다. 파리에 pc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29일 경기도 호텔에서 티비로 봐야 했는데, 당최 한 순간의 기억도 없다.
이 경기는 나달이 9년 만에 롤랑가로스에서 5세트까지 갔던 경기로, 매우 애타게 봤을 만도 한데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남겨놓은 이 사진만이 내가 경기를 봤다는 것을 알려줄 뿐.
어떤 사람이 파리 지하철에서 순식간에 폰 소매치기를 당하고 오직 거기 담겼던 사진만 걱정하는 글을 봤는데, 잠시 '여행에서 사진이 그렇게나 중요한가?'라고 생각했었지만.... 나도 이 사진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아예 나달의 16강전은 보지도 못했다고 기억할 수도 있었겠다 싶음.
대체 이 경기를 아슬아슬 지켜 본 기억은 다 어디로 사라졌지?!?
자칭 "카메라에 의존하기보다 내 머리 속에 영상을 남겨오자" 이런 사람이었는데, 이젠 그럴 나이도 지났나보다.
그저 사진이나 열심히 찍어두는 게 이제 "sightseeing"이라는 걸 실감했던 여행.
이 글을 쓴 뒤 유투브를 통해 경기를 다시 보니, 나달이 손을 짚고 굴러넘어지는 장면을 보면서 부상일까봐 걱정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기억만 되살아 났다. 그 외에는 신기할 정도로 4시간의 경기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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