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인가 2000년대 초반인가... 북한에서 자주 미사일 쏘고 핵실험한다고 그러던 시절... 미국에서 언어 연수 중이던 대학선배의 홈스테이 주인이 걱정스럽게 물어봤다고 한다. 너네 나라 괜찮냐고, 집 걱정 안되냐고. 하지만 정작 여기서 한국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걸.
2000년대 중반에 TV뉴스 업계에 일하던 시절, 뉴스의 맨 마지막 부분에는 무조건 '국제팀 뉴스'가 하나씩 들어갔는데, 별 특이사항이 없으면 '이라크 폭탄 테러 53명 사망' 이 기사로 시간을 채웠다. 매일 다루니 이런 류의 기사에도, 사망자 수에도, 둔감해졌지만 동시에 "아니 이렇게 자주 폭탄이 터지는 나라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 했었다. 하지만 불과 2-3년후 싱할리족-타밀족 내전으로 인해 자주 시내에서 테러가 발생하던 스리랑카에 2년을 살게 됐다. 처음엔 도착 며칠 만에 의류 매장에서 테러가 발생해 좀 무서웠지만 살다 보니 나 역시 테러가 발생해도 별생각이 없어졌고, 종종 폭탄이 터져도 거기에 사는 사람은 다 살아갈 수 있구나...하는 걸 알았다.
스리랑카는 현재 경제 파탄으로 시민들이 대통령궁 점거 시위를 한 끝에 대통령은 사임 뒤 해외로 도피한 상태이고, 물자가 부족해 정기적으로 단전을 한다고 한다. 대만에는 미국 하원의장이 방문을 해서 중국 전투기가 뜨는 등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내 스리랑카/대만인 친구 페이스북에는 "페이스북답게" 즐겁게 여행다니는 사진만 올라오고 있다. 역시 다들 밖에서 보는 것보다 심각하진 않은가보다. 물론 몇주전 대통령궁 점거 시위에 참석해서 그 사진을 올린 친구도 있었지만 일상은 여전히 지속되는 것 같다.
스리랑카는 경제가 파탄나고 근로자 임금이 너무 적어서, 내가 가르쳤던 많은 학생들이 해외로 이주했다. 이들은 페이스북에서 자주 고국의 문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인 글을 공유하고, 어쩌면 현지에 남은 이들보다 더 스리랑카를 걱정하는 듯 보였지만... 휴가 가서 즐겁게 웃고 관광지 풍경을 공유하는 사진만은 또 잊지 않는다.
유럽에 사는 내 친구는, 여행이 어려웠던 코로나 기간 동안 그저 자기가 사는 도시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을 뿐인데도 한국에서 친구가 "염장지르지 말라"고 해서 그 뒤로 사진 공개에 신중을 기하게 됐다고 했다. 사실 스리랑카 고국의 친구들이 물자가 부족해 고생하고 시위하는 와중에도 해외 사는 친구들이 여행 사진을 수십장씩 올리는 걸 보면 '소셜 미디어'라는 것은 정말 인류의 본능을 잘 간파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늘 경험하지만 '나의 소중한 한 순간'으로 끝나지 않고 뭔가 불끈불끈 '거기에 올려야 겠다'라고 생각이 자동으로 드는 거, 정말 신기하다.
예전에 여기에도 쓴 내용이지만 롤랑가로스 관람 때 그 비싼 돈 내고 들어온 경기장에서 열전이 펼쳐지고 있는 와중에도 다들 좌석에 앉아서 소셜 미디어에 경기장 사진 올리고 답글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는 걸 보면서, 왜 그런 미디어의 창업자들이 다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됐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3년전쯤, 이미 이 블로그에 소개했던 사진. 스리랑카말로 "그거 알아요? 이런 사진 페이스북에 안 올려도 비행기 탈 수 있다는 거?" 라고 써져 있다. 역시 만국공통이다.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내 나라가 망해 무정부 상태가 되고, 타국 사람들은 전쟁이 날까 촉각을 곤두세워도...우리의 일상은 그저 돌아간다. 밖에서 보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고, 인간의 본능은 늘 그대로다. 하루하루를 즐기고 그 미소를 남들과 공유할 수 있으면 된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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