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부산에 다녀왔을 때부터 오래 걸으면 한쪽 무릎이 좋지 않았다. 이르게 찾아온 노화 징후에 많이 놀랐다.
이르게 진단받고 대비하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뭔가가 확정되는 게 두려워서 병원은 아직 가지 않았다. 가족에게도 정확히는 말하지 않았다.
" 늙을수록 언덕에 살면 안되겠다. 집에서 나갈 때부터 (내려딛을 때) 무릎에 충격이 와."
" 안돼. 오늘은 산책 안 나갈 거야. 무릎나가"
이렇게 슬그머니 진실을 말해봤지만, 내 나이에 비해 너무 이르기에 가족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엄마는 내가 늘 언덕을 싫어했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말하는 줄 아실 테고, 언니는 실제로 "아휴 니가 무슨 무릎이 나가냐" 라며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여태 내가 사본 운동화 중에 가장 "정가"가 높았던, "air"💨 운동화도 사놓았지만...과연 내가 앞으로 달릴 수 있을지, 작년처럼 하루에 2만보 걸으면서 앞으로 유럽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을지 ... 이런 생각을 하면 슬퍼졌다. 좋은 시절 다 간 건가.
무릎 부근에 근육이 있어야 버틴다고 해서 약간의 운동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많이 걷지 않아서 오늘은 컨디션이 괜찮았다. 고혈압 경계선에 있는 엄마를 모시고 병원가는 날.
늘 다니던 그 병원에 가는 방법은 여러 버스 노선이 있는데 오늘따라 시간이 다 어긋났다. 오래 기다려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서 병원 바로 앞까지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려는 순간,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우리 앞으로 지나가는 걸 보았다. 지도앱을 통해 그 버스는 이미 지나갔고 또 수분 동안 기다려야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직은 탈 수 있다!
원래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절대 뛰지 않지만, 오늘 계속 지루하게 버스를 기다려왔기 때문에 또 기다리기가 싫어서 나도 모르게 뛰기 시작했다. 엄마도 같이.
나는 달리기가 느려서 웬만하면 타는 데 실패하는데 오늘은 성공했다. 나는 달려도 무릎에 충격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뻤고, 엄마는 힘껏 뛰었는데 아주 많이 숨이 차지는 않아서 기뻐하신다. 아웅 이제 다 늙어버린 모녀. 병원에 가서 혈압 재면 170쯤 나오는 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렇게 높은 수치는 안 나왔고, 의사도 한달간 지켜본 수치가 약을 처방하기엔 그리 높지 않다며 또 두고보자고 하신다. 기분 좋게 병원에서 나옴.
참..
내가 무릎 걱정을 하게 되다니.. 한 60대쯤 되어야 하게 되는 걱정인 줄 알았어.
그리고 오늘 또 하나 알게 된 게 있다.
오늘 그렇게 헉헉거리고 버스에 타서 일단 보이는 대로 교통약자석 맨앞에 앉았다. 버스 내부는 널널한 편이었기에 누구든 나이 드신 분이 타면 양보할 생각으로.
다다음 정거장 쯤에서 거동이 느린 할머니가 타시기에 벌떡 일어나서 그 자리를 비워두고 뒷자리로 갔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자리에 앉지 않으시고 뒤를 휘휘 둘러보시더니 나보다 더 뒷자리에 앉으셨다.
그때 알게 됐다. 나이 드시고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내릴 때 편하게 내리기 위해 하차 문에서 가까운 곳에 앉으신다는 것을. 타자마자 보이는 약자석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선 내릴 때 또 시간이 걸리니까. 한국 버스는 내리는 사람을 위해 천천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대로 일단 앉고 보는 건 차라리 젊은 사람이고 나이 드신 분들은 뒷문이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신다. 이제서야 곰곰 떠올려보니 나이 드신 분들은 앞쪽 노약자석이 비었어도 항상 뒤로 뒤로 더 들어가셨던 것 같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신체 변화를 겪으면 타인의 불편함을 이해하게 되고 예전과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