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girling에도 계급이...?



2024년 가을... 

나달의 은퇴를 앞두고 다른 많은 팬들은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하고 아쉽다며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어느 새벽에 있었던 그의 마지막 친선 경기 (은퇴는 얼마 뒤 국가대항전 정식 경기에서 함)를 잠이 쏟아져 도저히 못 보겠는 '나'를 발견하고는, 나의 첫 fangirling 덕질도 이제 끝나감을 알 수 있었다. 관심도가 이렇게 뚝 떨어지다니.

그러나...
몰랐던 건데 요즘 들어 새삼 알게 된 것은
2007년 어느 새벽 잠이 안 와서 우연히 틀었던 tv에서 발견한 그 선수가...당시 21살의 나이에 이미 world top 2였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상당히 편한 팬 생활을 했었다는 것이다.

애매모호한 각자의 호불호가 있는 게 아니라
승패 확실하고 이의 없는 랭킹이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파급력 있는 개인 종목에서 정상에 머물렀던 선수였기 때문에 나달이 그 분야에서 항상 ''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스포츠 그 자체의 성취빼고는 뭔가 다른 것을 위해 투쟁할 필요가 없는. 게다가 '개인' 스포츠라서 자기 행동에만 책임을 지면 될 뿐 같이 묶여있는 파트너들의 일탈 때문에 덩달아 굴욕을 맛봐야 할 일도 없었다.

게다가 나름의 공정성이 있는 경쟁을 응원해왔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됨. 배우 분야나 가수 분야 몇몇 시상식에서는 거물급의 "참석"만으로 그날 그 사람이 수상할 것을 점칠 수 있다는 것...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를 듣고서 참석하는 것이 과연 경쟁일까? 받아도 묘하고 안 받아도 찜찜한, 공신력없는 수많은 시상식들의 존재. 하지만 테니스에서는 "이번 호주오픈에 페더러가 참석한다니, 페더러가 우승이네!" 이런 예측 가능성은 희박. 
"심사위원 점수" "팬 투표"가 아닌 정당한 실력 경쟁으로 1등상을 타게 되니 승패에 쉽게 승복할 수 있다.

물론 어느날 새벽에 내 눈에 들어온 선수가 세계 랭킹 70위쯤 됐다면 '우리 애 경기도 좀 좋은 코트 배정해달라구요' '내 선수도 괜찮은 브랜드 스폰서가 붙어서 예쁜 outfit 좀 입었으면..' 이런 생각을 해야 했을지도 모르는데, 십수년간 팬질하면서 패배 때문에 슬픈 순간은 있어도 대우를 못 받아서 '억울했던' 순간은 별로 기억에 없다. 인기가 떨어져 관중석을 채우지 못할까봐 아쉬웠던 적도 없고.

나달이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관심을 끌기 위해... 뭔가를 억지로 하고 있는 것을 본 기억도 거의 없다. 그저 전투장에만 들어서면 5시간 동안 엄청난 주목을 받는 종목의 선수일 뿐이라는 것. 게다가 부상 때문에 1년 가까이 쉬어도 절대 테니스 팬들 사이에서 잊혀지지 않는 급의 선수였다.

그런데 다른 분야의 '덕질'을 좀 구경해보니 '스타'라는 사람들이 인지도를 유지하기 위해 - 잊혀지지 않기 위해 억지로 하고 있는 일이 꽤나 많아 보였고, 대스타라고 해도 업계에선 비슷한 급의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실상 '' 위치인 듯했다. 에이전시의 통제를 받거나 부수적인 홍보 일로 혹사당하는 그 대상을 보면 팬걸링 하다가 상처 많이 받을 듯한 느낌. 




결혼도 하기 전, 어린 나이에 발행된 나달의 자서전에 실린 여자친구와의 공식 윔블던 트로피 샷. 이성 친구 공개하면 인기에 타격이 있어서 비밀 연애를 해야 하는 몇몇 분야의 스타들을 보니, 자연스레 이성 친구를 소개하는 테니스 선수들 덕질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수들의 공적인 성취를 응원할 뿐이지, 사적인 영역은 그 선수의 자유로 놔두는 것.
가요 대상을 수상한 한국 남자 가수가 일반인 여자 친구와 찍은 트로피 샷을 공식 사이트에서 공개한다!?!?! 상상이 안 되네. 이런 자유가 없는 것도 뭔가 상당히 ''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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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 동안 승패에 희비가 교차하며, 부상에 따른 부침을 함께 해온 것 - "我不后悔风雪中和你走一回(노래 가사) " - 너와 함께 눈바람을 맞으며 걸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 가 내 fangirling을 마감하는 소감이었는데...

이제 한발짝 밖에서 다른 이들의 덕질을 구경해보니
세계 정상에 오른 개인 종목 운동 선수를 응원하는 일은 매우 luxury 덕질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운동선수라 해도 단체 종목은 또 다름. 심지어 Messi조차 소속팀이 부진하면 욕을 먹고, 2022 월드컵 우승 전까지는 월드컵에 대한 압박과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눈바람도 달다.
운이 매우 좋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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