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의 동물



늘 아파트 단지만 돌다가 오늘은 저녁 산책을 위해 밖에 나가봤다. 우리집은 언덕길에 위치해있는데, 단지 바깥 언덕길을 오르려다 보니 길 가운데 멈춰선 소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저기서 서서 뭐하는 거지? 

그녀는 지나갔고, 나도 그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고 보니, 왜 그녀가 멈춰섰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나도 그녀와 똑같은 행동을 했다.




냥이 사진 찍음.
예전부터 길냥이 밥그릇이 있던 곳인데, 우리 동네에 새로 아파트를 짓는 공사가 시작되면서 터전을 잃었나 했더니... 공사장 높은 벽 바로 옆에 아직도 밥그릇 몇 개는 있었다.

저기가 길냥이 급식소라는 건 오래 전부터 알았는데, 실제로 고양이가 거기 있는 건 처음 본다. 늘 사람들이 왕래하는 찻길 옆 인도이기에, 아마 인적이 드문 밤에만 와서 먹던 급식소인지...

인간에게 경계심이 적어서 내가 조금 다가가서 야-아옹 소리를 내도 도망가지 않았다. 급식소에는 놓인 사료가 없었고, 나도 줄 게 없었다. 배가 고픈가봐. 내가 뭔가 줄 음식이 있었다면 그냥 받아먹을 듯한, 인간을 아주 피하지는 않는 고양이.

야옹.
냐옹.
이야옹.

내가 내는 소리에 반응이 없었는데, 내가 길 가는 고양이 95%를 흠칫 멈추게 하는 '찍찍' 소리를 내자 드디어 반응한다. 




사람을 크게 경계하지는 않던 이 고양이는 그 소리를 듣고 흠칫! 귀를 쫑긋거리더니 벽 틈으로 도망갔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나봐. 😖

우리 동네에 우리 아파트만 빼고 사방이 다 재개발 공사를 시작하면서 많은 길냥이들이 터전을 잃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퇴거하고 난 후 다른 집들은 다 멀쩡한데 길냥이 급식소가 있던 집 벽만 부서진 것을 본 적도 있다.



고양이는 영역의 동물이라 자기 사는 영역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던데.... 우리 동네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많은 고양이들이 자기 영역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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