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석세션에 나오는 다국적 테크 기업의 젊은 수장이 한 말.
시즌 4까지 보는 동안 전 시즌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사.
평소에 소셜 미디어를 전혀 안 쓰다가도 해외 여행만 떠나면 갑자기 사진 수십 장을 올리는 - 국적 불문 여러 지인들을 보면서, 말그대로의 SNS - social network SERVICE가 인간의 심리를 얼마나 잘 파고든 서비스 업종인지 새삼 느끼곤 했다. "내가 여행을 하는 것만으로는 행복한 게 아니라, 남들도 그것을 알게 되어야 좀 더 뿌듯한 것". 오래 전에는 '페북/인스타에 해외여행 사진만 굳이 수십장 올리는 것은 자랑 목적이 아니라 사진 저장, 정리 보관의 의미도 있는 거잖아' 싶었는데 클라우드 - 구글 포토 등이 활성화된 요즘은 진짜로 '남이 내 여행을 알아야 된다'라는 의미만 남았다.
검색하다 걸려 나오는 블로그 글을 보면, 어떤 여행지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소개할 때 이런 예를 드는 경우가 꽤 많았다. "여기 사진 찍어서 인스타 올렸더니 지금 너 어디냐고 다들 연락 많이 왔던 곳이에요." 나는 '떠났지만' 고국에 남은 사람들 반응을 살피느라, 그 연결된 끈을 놓지 못하는 게 이제 여행의 일부가 된 느낌이다.
치열한 경기가 진행되는 롤랑 가로스 경기장에 앉아 있으면 관중석 경사도 때문에 아래쪽 사람들 휴대폰이 그냥 다 보이는데, 연령대 불문하고 경기 중간 중간에 다들 사진 올리느라 바쁜 게 보였다. "테니스도 테니스지만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남들도 알아야 좀 더 행복해지는" 인간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파고 들어서, 많은 테크 기업들이 거대한 권력을 갖게 되고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리게 됐다.
저 대사를 듣고 나니, 그 오묘한 과시 혹은 토로의 장을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이 만들어줬다는 게 더 쨍하게 와닿았다. 나는 그저 "데이터를 싸질러 주는 평민" ㅎㅎㅎ.
이번에 카카오톡도 새로 개편된 화면을 통해서 평민들이 채팅만 할 게 아니라 뭐 먹고 살고, 어디를 다니는지 "데이터 좀 싸질러 주고" 카톡에서 일상 사진 자랑 대회를 열기를 바랐던 모양인데, 이미 인스타그램이라는 매체를 확보한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일상 자랑 대회가 필요하지 않아서 반발이 큰 듯 하다. 게다가 전화번호만 공유한 -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진이 턱턱 올라오는 상황도 익숙하지 않고.
그러고 보니 중국 현대 드라마에서 그토록 많이 봤던 - "朋友圈 펑요취엔 - circle of friends" 형태를 카카오톡이 가져오려고 했던 거구나 싶음. 내가 wechat을 쓰지 않아서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중국 드라마를 보면 위챗 메신저가 동시에 朋友圈 (보통은 위챗 모먼트로 번역)에 연결되어 있어서, 전화번호가 연결된 친구의 일상 생활을 사진과 글로 다 들여다 볼 수 있다. 아마도 카톡이 이런 걸 원했었나보다. 펑요취엔은 친구 설정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폐쇄적 미디어라고는 하지만 메신저에 연동되어 있다는 점에서 '평민'들을 여러모로 다른 데 가지 않도록 묶어둘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진작에 이렇게 두 기능 (채팅 + 사진으로 일상 발산) 을 합쳐서 카카오톡을 만들었으면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을 것인데, 사람들이 카톡 + 인스타그램 병행에 이미 익숙해진 뒤에 뒷북 시도를 하려다 벽에 부딪힌 모양새. 어차피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에 가깝단 느낌이 들기에...처음부터 이 방식으로 했으면 정착도 쉬웠겠지. 전화번호와 일상 사진들이 당연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테고.
"데이터를 싸지를" 공간도 영리하게 잘 마련해줬어야 이익 창출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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