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걱정量 보존 노력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나는 숙제를 무지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숙제를 안 할 용기는 부족한 아이였고, 그냥 늘 밤 늦게 꾸역꾸역 하고 자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늦게 자는 버릇은 어릴 때부터 생겼다.)

어느 날, 숙제를 안 해갔다.
일부러 안 했는지, 깜빡 했는지, 하다가 다 못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하필이면 그날 담임 선생님은 숙제 안 해온 사람은 자진 신고하고 나와서 매를 맞으라고 하셨다.

앞에 나설 용기가 안 났다.
그때 나는 뛰어난 모범생(으응?)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생각하는 '나'라면 숙제를 안 할 리가 없었다. 내 이미지를 깎고 싶지 않았나보다.
몇 명이 나와서 맞았다.
선생님은 검사하다가 걸리면 더 혼나니까 알아서 자수하라고 했다.
몇 명이 추가로 나왔다.
더더욱 앞에 나갈 용기가 안 났다.

내 낯빛은 알 수 없지만 아마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을 지 모른다. 담임 선생님도 그걸 아셨을지 모른다. 그날따라 끈질기게 자수(?)를 요구하셨다.
하지만 난 나갈 수가 없었다. 난 모범생이니까.
선생님이 자수를 모두 받은 뒤에 숙제 검사를 실시하면 난 죽는 거였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도 소용없을...
선생님의 자수 강요는 끝났고, '이만하면 됐다'라고 생각하셨는지 숙제 검사는 없었다.
살았다.
살아도 산 게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그 순간의 갈등은 23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난다.


새로운 학교에 전학와서 맞은 6학년.
여전히 난 뛰어난 모범생이었다.(ㅋㅋ 초등학교 때 공부 못한 사람 어디있나... 이건 자랑도 아니니까 그냥 쓰겠다)
지금 생각하면 '낭중지추'처럼 뛰어난 모범생보다는, '범생이 이미지에 갇힌 모범생'이었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초등1학년 이후로 거의 없었던 "받아쓰기" 시험을 실시했다.
완전 어려웠다.
학생들이 쩔쩔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뭐 이런 이중자음 받침 같은 문제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서로 바꿔서 학생끼리 채점을 했다. 애들은 모두 울상이었다.

약 스무 문제 가량에서 두 개가 틀린 것으로 채점된 내 시험지가 돌아왔다.
하지만 내가 다시 보니, 네 개가 틀린 거였다. 내 시험지를 채점한 애가 그냥 자세히 안 보고 채점한 거였다. 'ㅔ'와 'ㅐ'의 차이같은 것을...
선생님이 틀린 수대로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다 맞은 사람? 한 개 틀린 사람? 아무도 없다. 두 개 틀린 사람?
내 손이 제일 먼저 올라갔다.
"와, 역시..."
"대단해. 어떻게 두 개 밖에 안 틀려?"

내 양심을 속였다.
난 알고 있었다. 내가 네 개 틀렸다는 것을.
하지만 1학기때 엎치락뒤치락하다가, 2학기 와서 1등으로 독주를 하게 된 '초딩'은 뭐든지 1등이고 싶은 얄팍한 마음이 있었나보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또 고민했다. '아냐, 내 잘못이 아냐. 채점한 애가 잘못한 거야.' '나중에 선생님한테 걸리면 난 그냥 빨간펜 그어진 수만 셌지, 내 답은 못봤다고 그러면 돼'
결국 나는 슬그머니 책상 아래에 공책을 놓고, 지우개로 틀린 답을 지웠다. 맞는 답을 슬쩍 붓터치하듯 그려넣었다.
그렇게 우등생 이미지를 유지했다.

이것 역시 20년 지난 지금도 종종 기억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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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건은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내 양심을 속이고 거짓을 행한 최대의 사건이다.
그래서 내 맘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그 이후론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물론 남의 맘에 상처를 준 '악행'은 있겠지만.
이걸 떠올린 이유는 초등학교 시절 때의 최대의 걱정은 무엇이었을까...돌이켜보다가 그런 것이다.
초등학생의 걱정은 기껏해야 이런 거였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 제대로 갈 수 있을까...이 정도였을 테고.
성장하면서 걱정의 양도 점점 증가한다.
학점 잘 나올까.
취직할 수 있을까.
연애할 수 있을까.
결혼할 수 있을까.
부모님은 건강하신 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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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숙제나 잘 해내고, 땅따먹기 놀이하다가 '시골소녀 폴리아나' TV만화를 보면 되었던 시기는 사라져버렸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난 걱정의 총량을 늘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는 생각이 든다.

건설적인 방식으로 걱정에 맞서는 게 아니라,
걱정거리를 가져올 것들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결혼해봐라, 행복이 두 배가 되겠지만 걱정거리도 두 배가 될 거야. 신랑 걱정에, 시부모 걱정에, 살림 걱정에....
애낳아봐라, 인생의 축복이겠지만 걱정거리는 열 배가 될 거야. 어떻게 키우지? 사교육비 감당이 되나? 밖에 나가서 나쁜 거 배워오는 거 아냐?

걱정거리를 차단하려는 본능적인 내 노력이 십여 년 간 정체된 내 삶을 만들었다.
아무리 차단하려 노력해도 걱정거리는 또 와서 쌓인다.
'이거 이러다 홀로 쓸쓸히 굶어죽겠군.'
(굶어죽을까 고민 하는 거, 농담아니다. 나 노후대책 하나도 없다)

걱정거리가 늘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걱정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그래도 32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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