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킨 게 아닙니다.




외국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있었던 일.

2008년 1학기.
나름 내가 정식으로 수업을 맡은 첫 학기인데다가
확실히 아이들을 잡고(?) 싶은 욕심에 자주 쪽지시험을 봤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슬금슬금 "cheating"을 하는 게 아닌가?
예전에 학생일 때 선생님이나 조교들이 "앞에서 보면 다 보여요"하던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현장 적발은 안 되었지만
나중에 답안지를 보고 나면, 내가 아는 평소 그 학생의 실력보다 너무 완벽한 답이 써있는 경우도 있어서
베꼈다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
계속 주의를 주었는데도 한 학생이 슬쩍 자료를 들어다보고 있는 걸 보자.
갑자기 분노가 솟구치며 나도 모르게 책상을 내리쳤다.

쿠아앙~~!!!
"선생님이 보지 말라고 했잖아아아아아!!"

당시 교실 책상은 철제 책상이어서 소리가 무지 컸다.
그리고 내리친 손도 무지 아팠다.
나도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은 내 자신에게 놀랐다.
상황을 무마해보려고 피식 웃어봤는데...
학생들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표정을 다 잡고
"선생님 화났어요.
답을 보고 쓰지 마세요"
하고 엄하게(!) 한마디했다.

커닝은 여러 명이 했는데, 하필이면 내가 내리친 책상 근처에 앉아있어서
범죄자(?)가 되어버린 여린 여학생은 집에 가서 울었다고 했다.
며칠 뒤 그 여학생은 나의 손에 뭔가를 꼭 쥐어주고 갔다.
그것을 펴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실망했을까봐 걱정되어서 뉘우치는 맘에 스스로 이렇게 써 온 것이었다.
순진한 마음이 전해오는 반성문^^
(혹자는 '똑똑한 캘러니야 대학 3학년 학생이 "미안하세요"라는 말은 없다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 이것은 책상이나 내리치고 화를 내는 선생이 "미안해해야 한다"라는 준엄한 경고문이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그 학생도, 나도, 이 일을 아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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