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캔디 로드, 나의 집.



서울에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나니, 내가 한때 이런 날씨가 365일 계속 되는 기후에서 2년간 살다가 왔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스리랑카 수도 주변부에는 365일 32도(= 90℉)에 가까운 날씨가 이어질 뿐만 아니라, 365일 일정하게 오후 6시 정도면 해가 지고, 오전 6시 넘어야 밝아진다. 밤에 별달리 할 게 없는 나라인데, 낮이 짧아 긴긴 밤을 버텨야 한다.

대체 이 더위를 700여 일간 매일매일 어떻게 견뎠지? 하고 생각해 보니,
내가 더위를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유달리 시원했던 나의 집이었다.

시원한 집을 고르려고 한 것이 아닌데,
꼭 집 계약을 해야하는 기간에 밀려, 막판에 이런저런 단점에도 어쩔 수 없이 계약한 집이 너무 시원한 집이었던 것.

스리랑카 제 1의 도시는 콜롬보, 제 2의 도시는 캔디(Kandy, මහ නුවර)인데 이 두 도시를 잇는 도로의 이름은 Kandy road이다. 나는 내가 일했던 학교 앞을 지나가는 캔디 로드에서 인접한 길에서 살았다. 집주소도 619/1 Kandy road. 한국으로 치자면 경부고속도로 길 옆에 살았다고 할까.
우리집에서 '콜롬보역'이 있는 동네까지는 버스로 30분, 캔디까지는 버스로 3시간 안 걸리는 정도. 

도로변 이 집은 항상 시끄러웠고, 항상 먼지가 많았다. 힘들여 물걸레 청소를 해놓아도 하루면 지저분해졌다. 나는 어느새 스리랑카 여자 단원 중 가장 더러운 집에 사는 단원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집은 무지 컸다.
이 집 1층과 지하층은 스리랑카의 판사이신 아주머니가 사시는 곳이었는데, 이렇게 쓸데없이 큰 집을 계약한 이유는 이 분의 직업 때문에 경찰 3-4명이 24시간 상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에는 불을 켜놓고 집 앞을 지켰다.

'오호, 내가 살아야 할 곳은 바로 이 집인 것이로구나!'
안심하고 이 집을 계약했지만, 바로 한 달 뒤에 이 아주머니가 콜롬보로 이사가시면서, 나는 거의 4층 구조에 가까운 이 거대한 집에 꽤 오랫동안 혼자 살았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듯.

나는 방이 4개, 화장실이 3개 있는 2층과 옥상층을 월세로 빌려서 모든 문을 잠그고 방 1개 화장실 1개와 부엌만 열어놓고 살았다.
이 집은 까마득하게 높은 천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키가 도저히 닿지는 않는 천장 위에서 늘어져 내린 거미줄을 보며 2년을 살았다.
벽 윗 부분에 거뭇거뭇한 것..... 거미가 버리고 떠난 먼지 쌓인 거미줄이다. ㅋㅋ
강풍이 부는 날이면 가끔 시커멓고 구불구불 뭉친 거미줄의 잔해가 거실 바닥에 착륙해있기도 했다.
처음에는 뭔지 몰라 깜짝 놀랐으나, 나중에 그러려니 하고 쓸어서 치웠다.

나는 더위를 잘 안 타는 편이라 더운 것은 견딘다고 해도, 한국에선 여름에만 참으면 되었던 각종 대형 벌레와 1년 내내 싸움을 벌여야 하는 게 제일 괴로웠다.
초대형 바퀴, 매일 달려드는 모기, 바퀴벌레약을 분사해도 죽지 않는 대형 거미... ㅠ.ㅠ



어느날 나타나 벽에 들러붙어 있던 초대형 거미.
꼬마 거미를 찍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진 오른쪽 아래 찍힌 것이 전등 커버.
이 전등 커버는 아마 길이가 25~30cm쯤 되지 않았나 싶은데...이 거미는 적어도 내 작은 주먹 크기는 되어보였다.
대체 어디로 사라질지 몰라, 두려움에 떨면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거미, 바퀴벌레에 비하면 이 정도 애들은 귀요미.
방에 서너 마리씩 다닐 때도 있는데 어차피 얘들이 날 더 무서워하니까.
재빠르게 샤사삭 이동하는 이 친구 중에 운나쁜 한 명이 부엌 문틈에 끼여 사망해 눌려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심심한 애도를....

내가 처음 스리랑카에 도착했던 해의 11월, 12월 경에는 홈스테이 하던 집 화장실에 바퀴벌레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화장실을 들어가지 못했을 정도로 바퀴벌레가 무서웠다. (한국보다 덩치가 더 큼) 하지만 1년, 2년이 지나고...스리랑카의 바퀴벌레는 대부분 날아들어와서 배를 뒤집고 죽어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지막 해에는 학교 일 때문에 바쁘면, 거실에 뒤집어진 바퀴벌레 시체가 산산조각 나서 널부러져 있는 것도 며칠씩 방치해놓고 맨날 보면서 지나다닐 정도로 무던해짐;;;;; 다행히 스리랑카의 나의 집은 실내에서 신발 신고 생활하는 구조.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다시 코딱지만한 넘만 봐도 기겁한다.

스리랑카에서 살면서 다람쥐가 조용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그들은 "깟깟깟깟깟" 하고 굉장히 큰 소리를 낸다.



이 집 거실 상단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난간이 있었다. 어디로 통해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사람은 허리를 펴고 설 수 없는 만큼의 공간만 있다.
나는 그 판사 아줌마 가족이 이사가고, 경찰들도 사라지고 난 뒤, 혼자 있는 밤이 너무 무서워서 아예 밤을 샌 뒤, 낮에 자기로 결심했다. 물론 하루인가 이틀인가 밖에 그걸 실현하지 못했지만.


어느 날 밤, 이 각도로 앉아서 강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저 난간에서 불쑥 어떤 생물체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 순간 내 마음 속 목소리는 아직도 기억한다.

'저건 또 뭐야?'

이집에 와서 별별 동물과 벌레를 다 보면서 기겁하고 있던 차에도 처음 보는 스타일의 생물.
그런데 그 순간의 그 동물의 '표정'도 난 기억난다.
'에이씨.... '

ㅋㅋㅋ
확실히 모르지만, 그 동물은 이 집이 빈집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곤 상당히 난감해하더니 고개를 돌려 사라졌다.
이 동물의 정체를 모르겠는 이유는, 얼굴이 상당히 커서.
저 정도 높이에 올라갈 수 있는 동물은 개과가 아니라 고양이과일 텐데,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생물체는 얼굴이 아주 컸다. 고양이는 머리가 작잖아. 지금도 이 동물의 정체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집에서 나를 가장 괴롭힌 동물은 따로 있었다.
판사 아줌마가 나에게 목재 옷장을 줬는데, 어느날 그 옷장 안에서 하얀 쌀알 크기의 조각들이 소복이 쌓인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뭘까. 이 나라는 참 신기해.

얼마 뒤, 내가 가지고 간 미스트의 플라스틱 뚜껑이 이빨 자국과 함께 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하얀 조각들은 쥐가 플라스틱 뚜껑을 갉아먹은 흔적이었다.
어휴.

난 곧장 목재 옷장을 다른 방으로 밀어넣어 버리고, 열쇠로 잠그는 철제 옷장을 구입했다.
그 뒤로도 이 쥐들은 내 음식을 먹어 치우고, 내 식탁 위에 매일 똥을 싸놓고...나의 신변을 너무도 위협했다. 어느 날은 쥐가 화장실 변기에 빠져 첨벙거리고 있었다.( http://mori-masa.blogspot.kr/2015/10/miya-meeya.html )
친구들이 추천한 쥐 끈끈이도 단번에 뚫고 올라가는 거대한 덩치의 쥐들이었다.
그 끈끈이에는 불쌍한 도마뱀과 바퀴벌레만이 들러붙었다.
결국은 쥐약을 놓는 극약 처방을 했다가, 시체 치우기는 물론이고 약먹고 피를 토하며 부엌을 돌아다니는 쥐와 만나기도 했다.

1년 계약이 끝나면 이 집을 떠나리라...결심했지만
끝내 내가 이 집을 재계약한 이유는...
시원한 침실 때문이었다. 스리랑카 집에는 대부분 천장에 Fan이 설치되어 있는데 1년 이상 fan 한 번 돌릴 필요가 없었고 어느 날은 춥기까지 했던 나의 西向 침실 ㅎㅎ 해가 늦게 들어, 늦게 일어나는 나의 생활 리듬에도 딱 맞는 곳. 어떤 단원은 자신은 늦잠을 자려해도 6-7시 사이에 자동 기상을 하는데, 그 이유는 집이 더워져 더 이상 잘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 집 덕에 스리랑카에서 더위를 크게 모르고 살았다. 내 침실이 약간 으슬으슬해서 카디건이고 뭐고 다 껴입고 외출할 때, 현관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가는 순간 '아, 기온이 이게 아니었구나. 으 더워'를 느끼게 해주었던 집.


나는 아무리 찾더라도, 그리고 하룻밤을 지내보지 않고는, 이렇게 시원한 방을 가진 집을 찾지 못 할 것 같아서 결국 이 동물의 왕국 같은 집을 1년 더 재계약 했다.
쥐 문제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존재 중의 하나, 우리 '탐'이가 해결해줬다.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에는 내가 목격한 우리집 쥐보다 체구가 작은 고양이였지만
이 고양이가 울집에 온 첫날 앵앵 거리고 다닌 것만으로 쥐가 모두 사라졌다.
반려동물은 평생을 함께 해야 하지만, 제자 집에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식탐이.
이제 소식도 알 수 없지만, 나의 스리랑카 마지막 11개월을 시원한 집에서 보낼 수 있게 만들어준, 최고의 남자!
'고양이는 쥐를 재미로 잡는다' 가 아니라 '다람쥐를 잡아서 섭취한다'까지 목격하게 해줬던 피와 살육의;;;;상남자!
언제까지나 기억날 것 같다.


각종 동물과 벌레와 전쟁을 치르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내 시원한 침실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이네...
2년간 모기장도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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