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엄마 생신 기념으로 서울 시내 호텔에서 1박을 했다.
엄마가 호텔에서 하루 쉬면 눈앞에 부담스런 살림 거리가 안 보여서 좋다고 하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 안 준비하셔도 되고.

그런데 투숙했던 날 오후 5시 경에 약간 빈 속에 맥주와 땅콩을 먹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대체 무엇인지
저녁 먹으러 걸어가는 길부터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하면서 뭔가 올라올 것 같은 불편감에 휩싸였다.

밤이 되자 증상은 약간 더 심해졌다.
나는 토하기 전에 전조 증상으로 입에 침이 고이는데, 침이 조금씩 고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생 동안 토한 것이 대여섯 번이 안 될 정도로, 자주 토해 본 것이 아니라서 이 메슥거리는 속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위'로 올리는 것은 잘 못함.

결국은 화장실에서 그냥 '아래로' 일을 한 번 보고 엄마께 '이제 괜찮아졌다'라고 말하고는 잠을 청했다. 

밤중에 잠시 깨었는데 으슬으슬 오한이 오면서 몸이 아프고 너무 추웠다.
엄마는 호텔에 있는 난방 설비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그냥 주무시고 계시고, 방 온도를 조절하려면 내가 일어나서 호텔 방문 앞으로 가야했는데, 거기까지 갈 힘도 없었다.

아까는 분명히 증상이 나아졌는데, 또 왜 이러지? 몸이 이러는 게 정상인가?
으슬으슬 너무 힘들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구질구질 청소 못 하는 세 사람만 모여 사는 집에서 모처럼 해방되어 주무시고 계신 엄마를 새벽에 깨울 수도 없었고, 증상도 모르겠고 원인도 모르겠는데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엄마가 걱정하시는 것도 싫었다.

어쩌지 어쩌지 고뇌하다가
다행히도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눈을 떠보니 다행히 오한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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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처럼 걸어서 집에 돌아와서도 얼마간 끙끙대다가
제 정신을 찾고 보니,
이젠 마음대로 의지할 수도 없이 늙어버리신 부모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애잔함이 밀려온다.
나 혼자 그냥 아프고 말지, 나 때문에 걱정하는 게 더 부담스러운 부모님.
내가 어린 나이였으면 아마 엄마를 깨웠을 것이다. "엄마, 나 아파..."

그러다가
결국은 그래서 배우자 (配偶者)라는 게 필요한 걸까..라는 생각도 했다.
서로서로 힘들지만, 그래도 내가 힘들 때 '어쩔 수 없이' 의지하고, 깨워서 힘들다고 맘 편히 호소할 수 있는 존재.
그리고 그 상대방도 그렇게 힘들다고 나에게 말해줬으면 더 좋을 존재.
서로 폐 끼칠 수 있는 존재.


ㅎㅎ
그런데 이미 결혼 생활이 오래 된 내 친구들은 아마 좋은 얘기 안 해줄 거 같다.


"야....남편은 그런 존재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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