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간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미운 마음이 그렇게 크면서도
결국은 모든 문화가 일본을 따라간다.
그게 참 신기하다.
몇 십년 전에 일본이 겪어냈던 일을 그 몇 년 뒤에 고스란히 한국이 겪는 것을 보면,
결국은 일본이 '동양'에서는 아직까지도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일본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문화, 일본의 물건들....이 몇 년 시차를 두고 한국에 들어온다.


내가 체험한 것은 99년 여름에 일본에 갔을 때 일본의 그 수많은 자판기를 점령하고 있었던 투명 과즙음료들이다. 그 전에는 어디에도 인공색소를 첨가하지 않은 음료가 없었다. 환타같이 주황색, 보라색 등등 색이 있어야 과즙음료라 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에서의 그 유행은 얼마 뒤 "2% 부족할 때"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들어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오사카 시내에 소니 전시장을 채우고 있던 것은 DVD 플레이어 광고였는데, DVD의 유행도 우리나라에는 조금 더 늦게 들어왔다.

그 외에도 국민 소득이 일정 이상 도달하면 시작된다는 와인 문화의 유행도 따라왔다. 크로아티아 같은 동유럽 여행의 유행..이런 것 역시 이미 오래 전에 일본을 한 번 쓸고 지나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왕따 문화, 비정규직 문제, 연애 - 결혼을 하지 않는 초식남 건어물녀....이런 것들도 차례로 한국에 상륙하고 있다.

세계의 여러 관광지는 일본 관광객 -> 한국 관광객 -> 중국 관광객이 쓸고 가는 순서를 보인다고 한다. 중국 관광객이 점령하게 된 관광지는 이제 수명을 다한 것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한때 한국 신혼부부에게 꿈의 여행지였던 몰디브도 현재 중국인들이 가득 채운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요즘 한국 신혼부부는 인도양에서 카리브해 쪽으로 눈을 돌린 듯 하다. 이제 칸쿤 등에도 중국인이 많다니, 또 새로운 유행 여행지가 생기겠지.


거의 수십 년에서 일년 정도의 격차가 보였던 일본 - 한국의 문화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느꼈는데, 의외로 상당히 오랜 격차를 두고 한국에 들어온 문화가 있다.




http://www.myfilmviews.com/2013/07/03/lost-in-translation-2003/



바로 할리우드 스타가 국내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같이 망가지는 것.
위 사진 속 영화 lost in translation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에서 중년의 할리우드 배우 역을 연기한 빌 머리는 위스키 광고를 찍으러 도쿄에 왔다가 일본 프로그램(Matthew's Best Hit TV+)에 출연해 그를 따라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민다. 이 프로그램은 실제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그런데 사실 그 모습은 약간 우스꽝스럽다. 그 영화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를 느끼게 하기 위해 그 장면을 넣은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미국 토크쇼에서도 별 우스꽝스러운 걸 다 시킨다는 건 안다. 그런데 느낌이 좀 다르다.)







2004년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ㅎㅎ 저런......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문화가 요즘에서야 한국에 상륙한 것 같다.

이전에는 스타가 내한하면 극장에서 레드카펫 행사를 갖거나 "욘 예 가 중 개~"를 따라하게 만들면서 인터뷰를 하는데 그쳤는데, 요즘 내한하는 잭블랙이나 코난 오브라이언, 그리고 SNL에 출연했던 몇몇 배우들은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며 망가진다. 곧 내한하는 클로이 모레츠도 한국 프로그램 출연해 "김치 싸대기"를 선보일 계획이라니, 이제 완전 문화가 바뀐 것 같다. 더 이상 레드카펫에서 사인해주고 셀카 같이 찍고...로는 한국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http://www.hyperplinks.com/category/video-2/movies/page/5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커지면서 "하늘 같던 미국 연예인"이 "같이 노는 연예인"으로 바뀌는 느낌이랄까.  또한 한국의 스타들이 아시아권에서는 그렇게 "국빈급" 대접을 받게 되어 [연예인 수출 국가(?)]가 되면서, 외국 연예인이 툭 던지던 "한쿡 싸랑해요~"에 감동하던 시절은 이젠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십여 년 전에도 가능했던 문화가 이제 한국의 보편적인 문화가 되는 것을 보니...
앞으로 또 어떤 일본 문화가 들어올지 궁금해진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