離巢이소 시기



23년 5-6월경 아파트 놀이터 부근 바닥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있는 걸 봤다.
조그만 새가 날아가지도 않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사진도 찍어뒀었다. 피하지도 않고 날아가지도 않고 땅에 그냥 앉아 있는 새는 처음 봐서.

그런데... 당시 나랑 가장 친하던(??) 아파트 고양이가 후르륵 달려가더니 그 작은 새를 공격했다.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돌리고 놀이터를 빠져나와서 그 다음 상황은 모르겠다. 잡아먹혔는지, 어떻게 됐는지... 자연스런 먹이 사슬이지만 그냥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그 아기새는 졸지에 내게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놓은 새가 되었지만 그날 그 사진도 지웠다. 계속 그 죽음이 기억날까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놀라서 그때 정보도 찾아봤었는데, 5-6월은 이소離巢 시기로,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 처음으로 독립을 하는 시기라고 한다. 하지만 날아다니는 것이 익숙치 않기에 그 시기에 그렇게 땅에 앉아 있는 아기 새들이 많다는 거였다. 그냥 그대로 둬야 자연에 적응하는 법을 배운다는 글도 있고, 길고양이가 공격할 것 같으면 살짝 들어올려서 높은 곳에 올려주라는 글도 있고...

나도 그때 그 글을 읽고 잠시 후회했었다. 사실 그 새 쪽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가진 않았지만 멀리서 사진 찍을 시간 대신에, 내가 살짝 다가가서 구해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싶어서. 

평소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동네 새들이 유난히 짹짹 끼약끼약 삐악삐악 소리를 많이 낼 때가 있는데, 그때는 고양이들이랑 대치를 하고 있을 때가 많다. 내가 사진을 찍던 그 당시에도 땅바닥에 주저 앉아 고양이의 공격을 받는 아기새가 안타까워 어미새들이 끼약끼약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ㅡ.... 기억이 희미하다.


2년이 지났는데, 요즘 유난히 트위터에 이소 시기 바닥에 주저 앉은 아기 새들 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구해준 사람, 데려다가 먹이를 준 사람...

그러다가 갑자기 3년 전 2022년 5월 중순의 일화가 떠올랐다.
당시 코로나로 2년간 잠겨 있었던 해외여행이 조금씩 시작되던 때였고, 나도 롤랑 가로스 테니스를 보기 위해 입장권을 다 사놓고, 호텔 예약도 모두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롤랑 가로스 이전 마지막 관문인 로마 오픈에서 나달이 다리를 절뚝이며 경기에서 패했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때문에 열흘 뒤 개막하는 롤랑가로스 참가마저 불투명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끄악. 이미 모든 예매와 항공권 구매 등등을 마쳤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 (당시 코로나 상황 때문에 사실 모든 예약의 무료 취소가 가능하긴 했다.) 만약 나달이 부상으로 프랑스에 오지 않더라도, 어려운 인터넷 예매를 뚫고 결승전 입장권 구입까지 성공했으니 놓칠 수 없는 기회라서 파리에 갈 거였지만 너무 맥이 빠졌다.

'나달이 안 온다면 대체 결승전에서는 누구를 응원해야 하지? 나달과 경쟁 관계에 있는 선수가 우승하는 게 싫어서 그 반대편 선수를 응원하면서 결승 관전? 남이 잘 안 되기를 빌러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갑자기 인생이 우울해졌다. 
'😔 간만에 적극성을 발휘해서 예약 다 마쳤는데, 되는 일이 없네...내 인생 왜 이래.'
이때 내 심정을 절절히 달래주던 음악이 succession OST 중에 "Vaulter"라는 곡이다. 이 곡에 대해 블로그에 쓴 적도 있다. 이 곡을 들으면서 혼자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한탄했었다.


그러면서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파트 놀이터 쪽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새 한 마리가 짹짹 거리며 내 주위를 날아다녔다. 너무 신기해서 그때도 사진을 찍어두었고, 그때 느낌이 그 새가 '괜찮아, 프랑스에 가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는 것만 같았다.

하늘이 보내준 🐦 새인가??
ㅎㅎ 그 뒤로 이상한 미신을 믿고 난 프랑스로 떠났고
나달은 발 부상 부위에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아예 신경을 죽이는 마취주사를 맞아가며 결승전을 뛰어서 우승했다.

내 주위를 계속 짹짹 거리며 날아다니던 그 새가 왠지 나에게 걱정말라고 미리 알려준 것 같아서 한동안 그 사진은 내 카톡 프사이기도 했다.😌


이 글을 지금 다시 쓰는 이유는...
3년이 지나 갑자기 생각해보니, 그 새는 행운의 새고 뭐고 사실 둥지를 떠난 아기새가 걱정되어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짹짹거리고 있던 어미새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 하필이면 그때 시기도 이소할 때라는 5월 맞다.

아무튼 삶은 무수한 착각으로 굴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착각이라고 해도 그게 나에게 큰 위안을 줬다면 
착각의 목적을 훌륭하게 다 해준 것 아닐까 한다.
아마 종교란 것도 이런 것이 아닐지.


새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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