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운전(?)의 기억




나는 운전 면허가 없다.
여태 그다지 필요를 못 느꼈던 이유도 있지만
운전을 배우는 데 필요했던 필수 과정 - 누군가 잘 모르는 사람과 밀폐된 공간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 - 가 정말 싫었던 게 가장 큰 이유다. 하긴, 고등학교 때 수학을 엄청 못 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과외를 받지 않았다. 누가 내 옆에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엄청 거슬리고, 나로 하여금 집중을 못 하게 만드는 일이다. 난 정말이지, 초등학교 2학년 이후로는 정규 학교 교육 외에 뭔가를 돈을 내고 배워본 적이 없다. 무엇이든 혼자 하는 스타일인데, 운전만은 도저히 자습으로 익힐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즘 너무 끔찍한 사고를 일으키는 음주 운전자를 보거나
연예인들이 단속에 걸려서 자숙한다며 들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일이 있다.




대학원 입학 첫 학기.
학과의 모든 교수님과 모든 학생이 참석해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때 학과 대표를 맡고 있어서 무척 걱정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자리는 무사히 마쳐졌고, 교수님들은 떠나가고 술자리는 2차로 이어졌다.


보통 십여 명 이상이 모이는 술자리는 들쑥날쑥.... 취하는 사람도 있고, 안 취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날 만큼은 과의 거의 모든 인원이 다 취했다. 마지막으로 간 노래방에서 학과의 가장 연장자이시던 "형님들"은 소찬휘의 tears 같은 노래를 부르며 망가지셨고, 유난히 소파가 많던 그 노래방 구조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소파 사이로 낙하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결국 그 "형님들" 중의 한 분은 노래방에서 화장실 갈 때 신으라고 제공하는 슬리퍼를 신고 만취한 채로 부천의 집까지 가시기도 했다.


집에 가는 대중교통편이 없는 0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노래방에서 나와서 집에 가려고 하는데, 과에서 "유흥계의 총아"로 유명했던 남학생이 남은 흥을 주체하지 못 하고 혼자 삼성동의 나이트에 가겠다고 했다.

위에 기술한 것과 같은 이유로 (밀폐된 공간에 모르는 사람과 있는 것) 택시 타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나는, 정말 순진한 생각 100%로 삼성동까지만 차를 태워달라고 했다. 당시에 살던 집이 그쪽 방향이었는데, 택시를 타는 구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집 방향이 비슷한 다른 남자애까지 한 명 더 태우고 그 만취한 차는 출발했다.
운전자는 "제발 좀 소리를 줄여라" 라는 나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음악 소리를 최대로 올린 채 지그재그로 차선을 질주했다. 성수대교를 건너고는 새벽 1시에 언주로  한복판에 나를 내려놓고는 유유히 그들이 갈 길을 가버렸다.


강남 대로 한복판에서 다행히 나를 걱정해주시는 너무 친절한 택시 기사님을 만나 무사히 내 집까지 왔다.




이 일은 정말 지나면 지날수록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일이다.
택시를 타기 싫다고 해서 만취한 친구 차를 그냥 얻어타다니, 나도 취하면 얼마나 이성이 마비되는지도 알았고, 사고가 안 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도 새삼 느꼈다. 그 차에 동승했다가 썰렁한 평일의 삼성동 나이트까지 같이 다녀왔다는 또다른 친구는 정신이 돌아온(?) 다음날 "우리 진짜 다 죽을 수도 있었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장점이 없는 너무 무모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딱 하나 장점을 생각해낼 수 있자면, 이 경험이 약이 된다는 것이다.
정말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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