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20대 때부터 누군가 이상형을 물어보면
항상 '똑똑한' , '명석하고 현명한' 남자라고 가장 먼저 대답하곤 했다.
지금은 이상형이라기보다는, 좋아하는 사람 유형에 이것저것 더 갖다 붙었지만......
공감 능력 있는 사람, 돈 쓰는 우선 순위가 나와 같은 사람, 음식 낭비하지 않는 사람 등등.


경험이 많은 친구들은 대부분 '똑똑한 남자'라고 하면 말린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차갑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나도 그것을 이해하게 됐고, 그 기준을 포기할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꽃보다 할배" 프로그램을 보다가 나이 들어서도 나름 여러 외국어를 조금씩 구사하시고, 비행기 안에서도 새로운 공부를 하시던 이순재 할아버지를 보며 역시 두뇌의 명석함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했다. 사실 명석함보다는 'an eternal student of something' 이 이상형에 가깝다. 이 영어 표현은 소설 contant gardener에서 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똑똑함이란 어쩌면 '경제성'에 가깝다.
똑똑한 사람들은 한 상황을 보고도 여러 가지를 눈치 챈다. 약간 둔한 사람들은 보고도 모르는 것을 놓고, 똑똑한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수십 가지를 알아낸다. 거기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도 나오고 재빠른 상황 판단도 나온다. 남들보다 순식간에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 '영재 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특출난 아이들을 보여 주고 '솔루션' 같은 것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인데, 아이같지 않고 되바라진 아이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본 적이 없는 프로그램인데 오늘은 우연히 보게 되었다.


41개월, 만으로 3살을 넘긴 이 꼬마는 방정식을 척척 푼다. 척척 푸는 게 아니라 칠판과 책에 붙어서서 그것만 하고 있다. 나름 우등생이었던(??) 내가 만 12세 - 초등학교 6학년 때 방정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시작으로, 중고딩 시절 '수학 불능자'가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ㅋㅋ ;;;이 아이는 정말 영특하다.


아이 아빠의 건강상 휴직으로 인해,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져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한 아이 엄마는 아이가 너무 앞서 나가는 것에 대해서 더 걱정한다. 초등학교 진학하고 나면 그 아이는 뭘 더 이상 배우겠는가. 엄마는 아이가 늘 붙어사는 칠판에서 떨어지게 하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게 엄마가 묻는다. " 대체 왜 그렇게 공부하려는 거야? " 방정식은 척척 풀지만 만 3세답게 아직 어눌하고 혀짧은 말로 아이가 대답한다.






돈 벌어야 되잖아. 나 XX 살 때 돈 있어야 되잖아.


넌 돈 벌 필요 없어. 엄마가 돈 벌게.


아니야. 내가 벌게. 엄마도 돈 벌려고 공부 하잖아. 엄마 공부하기 싫은데 하잖아. 내가 할게.






여태까지 본 영재 중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아이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똑똑함'과도 비슷한 아이였다.
누구도 말해준 적 없지만, 3살 짜리 이 아이가 관찰과 직관으로 알아낸 것이었다. 세상 사는 데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것 때문에 엄마는 억지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 특히 "엄마 하기 싫은데도 공부하고 있잖아"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대체 이런 것을 파악해 낼 3살 아이가 있을까.


엄마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너무 가슴 아파하며 일단 자녀에게 중심을 두기로 하고, 수험 준비는 중단한 상태라고 한다. 이 영특한 아이는 어떻게 자라날지, 입시와 명문대에만 방점이 찍혀 있는 한국 교육에서 이 아이가 잘 살아남을지 걱정이다.






차가운 똑똑함이 아닌, 따스한 똑똑함....
이 아이는 어느 정도 남을 배려하는 따스함을 가질 싹이 보이기는 한데,
참 가지기 어려운 가치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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