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풀 수 없는 의문


이제 풀 수 없는 의문



한때 합정동 쪽의 건물 3층에 산 적이 있었다.
근처에 중학교도 있었고, 우리 건물 1층에는 식당, 2층에는 사무실, 지하에는 작은 기획사의 연습실이 있어서 사람들이 좀 왔다갔다 하던 건물이었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에는 '하리수'가 이곳에서 연습했었다고 하고, 그뒤에는 '파란'이라는 그룹도 있었다.

내가 외국에 체류하느라 가족과 같이 살지 않았던 어느 추운 겨울날, '파란' 멤버의 생일인가 뭔가 행사가 있었는데... 지하에서부터 줄 지어 기다리던 팬들이 1층, 2층, 계단을 타고 올라와 3층 우리집 앞쪽까지 와서 추위를 피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건물 들어와서 1층 정면에 작은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곳을 음식점 손님 아니면 지하 연습실을 쓰는 사람도 이용하는 것 같았다. 3층에 살던 시절 어느날,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려서 나가봤더니, 깜짝 놀랄만큼 귀여운 소녀(연습생)가 화장실 열쇠를 좀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한 번 보면 기억에 남을 얼굴이었는데 그뒤로 데뷔한 걸 못보았으니, 정말 연예계 데뷔란 쉽지 않은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던 중학생들도 지나다니던 길이었던지라, 가끔 그 1층 화장실에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들어와서 담배를 피우고 가는 일도 있었다.
깐깐한 우리 언니는 걔네들을 혼내서 내쫓기도 했다.
거의 10년전,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아빠와 나만 집에 있었던 어느날,
아빠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시며 현관을 통과해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가기 시작하셨다.

우리가 살던 3층은 대충 이런 구조였는데, 아빠가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시다가 눈을 떠보니 어떤 여자가 안방 입구에서 손을 뻗어 그 옆 책장 선반에 놓인 지갑을 가져 가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도둑을 잡겠다며 뛰어내려가신 거였다.
나는 아빠가 걱정 되어 같이 마구 뛰어 따라내려 갔는데, 내려 가면서 2층이나 1층 계단에서 우리집 것이 아닌 신발 한쪽을 본 것 같았다.
뭐지?
아빠는 3층에서 마구 뛰어내려가 길가에 서 계셨지만,
인적이 그렇게 드문 편이 아닌 그 길은 너무 평안했다.
아빠보다 먼저 누군가 신발이 벗겨진 채로 뛰어내려온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행인들도 뭔가 웅성거렸을 텐데 말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시는 아빠를 모시고 같이 3층으로 올라왔는데,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아빠는"꿈인가? 꿈꿨나?"하셨다.
그래, 꿈속의 한 장면이 누군가 내 물건을 집어가려 하는 것일 수도 있지.


그런데 내가 본 '남의 신발'은 뭐지?
그 신발은 3층으로 올라올 때는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이젠 내 기억조차 그것을 진짜 본 것인지, 상상 속에 그려낸 것인지 가물가물하다. 그 여자분이 집에 들어왔던 게 맞다면 내 방을 지나서 안방까지 간 것도 무섭고 정말 꿈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도둑이 급한 대로 1층 화장실에 뛰어들어가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젠 영원히 풀 수 없는 의문이 됐다.
이 날 이후로는 현관문에 꼭 걸쇠를 걸어놓는 습관이 생겼다.
그 전까지는 동네를 너무 믿었나봐.
8년 전에 떠나온 합정동은 이제 홍대 지역의 지속적인 팽창으로 내가 살았던 그곳까지 카페나 음식점들이 더 많이 개업한, 번화한 지역이 되었다. 그 집에서 한강으로 산책 가던 길에 항상 지나갈 수 밖에 없었던, 낙서 많은 옛YG 건물도 기억나고 ㅎㅎ 언제나 그 앞에서 서성이던 팬들도 기억난다.

오래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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