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서면...





사람들은 어떤 직업으로 인해 특정한 위치에 서게 되면 그것과 자신이 동일시되면서
그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무시하게 된다.
크게, 작게, 어떻게든 발생하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본인이 무시 당하면 크게 분노하게 되지만, 동시에 본인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처럼 하지 못하는 사람을 약간 우습게 여기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방송국에서 일할 때 그런 것을 특히 많이 느꼈는데
그 직업의 특성상 남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접근권을 얻게 되기 때문에, 거기에 접근하기 위해 우르르 줄 서있는 사람이라든지, 그것을 동경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데서 일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슬슬 '자신'자체가 특별한 거라고 착각하기 쉽게 된다. 자신이 목에 건 카드 하나 벗어던지면 자신도 접근을 제지당하는 사람일 텐데도.

해외 여행이 쉽지 않았던 시대에 자주 해외 취재를 다녔던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그 자부심은 어찌나 크던지...가끔 함께 식사할 때면 그런 '잘 나가던 시절' 무용담을 늘 들어야 했다. 당시에 나이 어린 부서 여직원들의 휴가 해외 여행이 잦아지자 자신들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던 해외 탐방이 보편적으로 바뀌는 추세가 싫었던지, 해외 휴가에 대해 얼토당토 않은 말을 늘어놓던 사람도 있었다. 나만 특별하고 남들은 그렇지 않아서 으쓱거리고 싶었는데, 누구나 하는 흔한 것이 되는 게 싫으셨던 듯.


그냥 자신의 직업이 싹 거둬진 뒤에는 그 온전한 자신 자체로는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닌데
그저 잠시 머물러 가는 자리에서, 현재 자신은 쉽게 가능한 일을 어렵게 해내는 남들을 보면
그게 우스워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현상이 생긴다.


나도 나 스스로에 살짝 놀란 적이 있었다.

전에 어떤 일을 할 때 작은 도시에서 나름 가장 좋은 호텔 중 한 곳에 2주간 머무르면서 매일매일 3끼 식사를 그 호텔 뷔페에서 무료로 제공받은 적이 있었다. 그 도시 전체에서 가장 좋은 뷔페로 꼽히는 곳이니, 주말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고 큰 잔치는 아니더라도 칠순 축하 가족 모임 같은 행사가 한 켠에서 열리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2주간 매일매일 같은 식사를 하니, 온갖 음식이 펼쳐진 뷔페도 지겨웠고 시시해졌다. 매일 대충 걸쳐 입고 그 식당을 드나들었다. 어느날, 저쪽 한 켠에서 온가족이 모여 축하 모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거나, 그래도 한 끼 6만 원대 식사라고 한껏 차려 입고 옆자리에 앉아 우아하게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그들이 갑자기 우습게 느껴졌다. '핏, 이게 뭐라고 여기서 파티를 하나.... 아고 여기에 저렇게 꽃단장까지 하고 왔구나....'


그러다가 다시 내가 우스워졌다.
허허 내가 뭐라고 내가 저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게 될까. 어쩌다 나도 2주간 여기서 식사 하다가 사라질 사람일 뿐인데, 이 식사 자리가 소중한 사람들을 비웃게 되다니, 나도 그냥 그런 인간이었네.


이상하게도 뭐 하나라도 남들과 다른 일을 하게 되면, 그걸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시시해보이게 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보고, 타인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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