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years....




15년 전 오늘, 내가 떠나왔던 톈진.
이제 시간이 너무 지나서 그날 느꼈던 감정/ 기분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단지, 8개월 살았는데 알 수 없이 짐이 많이 불어서 고생했던 것.
물가가 싸니까 책, 사전도 많이 사고 (중국어 공부는 안 했지만 중국어 교재도 사고, 조금은 읽을 줄 아는 스페인어 교재도 사고, 러시아어 교재도 사고, 심지어 읽지도 않을 러시아어 문학 선집까지 삼) 한국에 비해 저렴한 중국식 불법 cd, dvd사는 것을 좋아했는데, 케이스까지 안 버리고 가져오는 등.. 짐 부피가 안 줄었을 법도 하다.

매우 큰 가방 하나와 기내용 정도의 작은 가방 외에도, 이런 저런 자질구레한 것들, 내가 일하던 학원 원장님이 챙겨주신 참깨였나... 그런 거 한 봉지까지 포함해서 나에게 딸린 짐이 8개였다.

공항에서 짐 부치는 돈을 더 낼 각오를 하고 갔는데, 다행히 회원 등급이 높은 학부형을 만나서 함께 짐도 무료로 부치고 그분 덕에 처음으로 B747 2층 비즈니스석에 타봤다. 그날 이후로 아직 747 2층 타본 적은 없네 ㅎㅎ.

그 아주머니랑 거기서 사진도 같이 찍었는데 그 시절 어르신들은 이메일 많이 하실 때도 아니고 사진을 건네받지 못해 그 사진을 못 본 게 아쉽다. '진영이 어머니'인가 그랬던 거 같은데 🙂 747기종은 이제 거의 퇴역 기종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탈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아서 아쉽다.

진짜 사건은 게이트 앞에서 생겼다.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다가, 미처 부치지 못하고 기내에 들고 타야 하는 여러 개 짐을 들고 탑승구로 거의 들어가려 하는데 직원이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ㅎㅁㅇ님, ㅎㅁㅇ님 여기 계신가요?" "전데요?"


내가 다른 여러 짐을 신경쓰느라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핸드백을 놓고 일어서서 탑승구로 이동한 거였다. 그 핸드백 안에는 내 여권과 미처 환전 못한 약 100만원(₩) 가치의 중국돈이 들어있었다. 정직한 분이 그걸 발견해서 공항 직원에게 주었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비행기는 출발해서 난 한국에 도착했는데 여권도 없고 돈도 날릴 뻔 😋 다른 건 공항에 다 놔두고 와도 되는데 가장 중요한 걸 놓고 일어서다니...


15년 만에 방문한 톈진은 정말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상상한 범위 내에서 변했다.
거기에 살 때에도 이미 '이 곳은 몇 년 뒤면 정말 많이 변하겠구나' 느낌이 당연히 왔었다. 이미 2008 베이징 올림픽 개최도 결정된 후였으니...


하지만 예상치 못했는데 가장 많이 변한 곳은...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건너편 미개발 동네.







어느날 같이 살던 선생님이랑 건너편 동네로 놀러가봤었다.
제대로 포장된 길도 없었고, 시장에서는 냉장되지 않은 고기를 나무 판대기 위에 내놓고 팔고 있었고
영화에서나 보던 작은 벽돌로 된 낡은 집들이 있던 동네.

당시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건너편 동네로 가는 육교가 생겼다.
육교 위 한 켠에 오래 전 그 시장같은, 소박하게 과일/채소를 내놓고 팔고 있는, 낡은 옷을 입은 상인들이 있었다.
추억처럼 그것들을 하나쯤 사보고도 싶었지만, 내가 집으로 귀가하는 게 아니라 여행중이라 처치 곤란...








헉! 그 동네가 이렇게 변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는 거의 그대로인데 (진짜 그대로. 낡지 않은 것도 신기) 
여기는 말그대로 상전벽해.

물론 시내 중심에서 택시로 30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하는 곳이었지만
주위가 휑하고 당시엔 너무 외져서 개발이 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지하철까지 개통했다.
땅값이나 동네 위상은 서울의 그것과 약간 다르긴 하지만 위치 상으론 아주 오래 전 일원동 느낌??
왜냐하면 당시에는 없던 아주 큰 병원이 이 지역에 새로 들어서 있었고 아파트 단지가 많아졌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상업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당시 거주자들은 다 밀려났겠지.

이 동네에 내가 지하철을 타고 오다니...놀랍도다.
내가 살던 당시에는 외출도 편하게 못했는데
그때도 지하철이 있었다면 열심히 놀러다녔겠지.


사실 이 지역까지 지하철이 개통된 건 2018년이다. 
이제야 너무 오랜만에 오게 되어, 아주 특징적인 건물 외에는
거리도, 그 풍경도 이젠 낯설어진 게 너무 아쉬웠지만
그래도 2019년에 오게 되니 이 지역까지 이렇게 지하철을 타고 돌아보고 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동네를 다시 찾아가보는 생각을 하면서 이 동네를 가려면 그저 택시 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쓰던 유일한 중국어 - 우리 아파트 이름을 정말 백만년 만에 택시 기사에게 말하는 순간이 오겠구나, 내 중국어를 과연 알아들을까...그 상상을 했던 것에 비하면 이것 역시 상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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