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쇼핑카트를 끌고 마트 밖으로 나와서 집 근처까지 끌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직원들이 그거 수거하느라 고생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러다 갑자기 작년 어느 추운 겨울날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갔던 진짜 추운 날) 들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 4명의 20대 청년(!) -그들에게 내가 완전 아줌마 나이라는 것은 비밀 -들과 함께 중동 국가 운동 선수들 통역으로 일하고 있었다. 20대 청년 중 2명은 아랍어 구사자였고, 나머지 두 명은 나처럼 영어로 통역을 했다. 참, 그중 한 명은 영어 통역 이상의 다국어 구사자이긴 했다. 독일에서 태어나서 한국어보다 독일어/영어가 더 편하다는 친구. 우리가 머물던 호텔 외에도 추가로 세 곳의 호텔에 통역들이 여러 명 더 있었는데, 나중에 다들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기본으로 3개국어 구사자였다. 이런... 나는 영어는 겉핡기로만 하고 한국어에만 능통한 1개 국어 구사자인데. 쩝.
다른 아랍 국가와 다르게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란팀이 내 담당이었다. 다행히 이들도 영어를 그닥 잘 못해서 나의 소박한 영어 실력이 크게 들통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ㅎㅎㅎ
아무튼, 남자들만 우글우글했던 그 호텔에서 혼자 여자인 게 불리한 점도 있었지만 유리한 점도 많았다.
특히 남녀 구분이 확실한 이슬람 국가의 특성상, 선수들과의 접촉은 제한적이었고 나에게 뭔가를 함부로 부탁하지도 못했다. 단지 임원진들은 나를 약간 귀찮게 하긴 했지만.
그래서 나는 바쁜 일이 사라진 2주차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방에서 놀고 먹으며 보냈다.
그런데 다른 중동 기름부자 나라 4개국의 남자 통역들은 신나게 부려먹히고 있었다. 환전까지 해다가 갖다주는 것도 봤고, 세탁물 문제로 늘 골머리를 앓았으며 심지어 어떤 나라 임원은 새벽에 심장 발작이 와서 통역이 한밤중에 불려나갔다. (무사히 스텐트 시술)
특히 1인당 국민 소득이 7-8만 달러라는 기름 부자 나라 카타르는 한국에 와서 돈을 우습게 쓰고 갔다. 갑자기 강추위가 찾아오자 그 자리에서 패딩을 200만원어치씩 사기도 했고(일주일 뒤 본국으로 돌아가면 입을 일이 없는) , 귀국 비행기 탑승을 위해 오후 8시에는 호텔을 떠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1박 추가 방값을 다 지불했다고 한다. (약 20만원 정도하는 방을 20개 가까이 씀) 이란팀은 카타르팀과 동일 비행편(카타르항공)으로 출국하는 거였지만, 돈이 아까우니 당연히 낮 12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모두 버스에 싣고 일정을 소화했다. 하지만 카타르팀은 결승전을 마치고 온 뒤 단 두어 시간만 호텔에 추가로 머물기 위해 수백 만원의 돈을 그냥 지출하는 재력을 과시했다.
사회 생활 경험이 없는 대학생 통역들이 거절도 못하고 각팀이 시키는 대로 휘둘리고 있는 게 안타까웠는데, 그때 제일 놀란 것 중의 하나는 카타르 팀 선수들이 마트에서 호텔까지 카트를 끌고 오는 바람에 통역 담당 남자애가 영하 15도의 날씨에 그걸 다시 돌려주러 간다는 것이었다. "그걸 니가 왜해? 끌고 온 사람이 해야지!" 하지만 그 학생은 착해서 그걸 다 해줬다고 했다.
대신에 워낙 돈을 물 쓰듯 (기름 쓰듯?) 쓰는 나라다 보니, 나중에 그 통역에게 따로 수고비를 좀 더 줬다고는 한다. 그래도 그 친구가 고생을 많이 해서 하나도 안 부러웠다. 당시 카타르 통역 친구는 200달러를 추가로 받았다고 고백(?)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의 씀씀이로 미루어볼 때 200만원 받았는데 그냥 줄여서 얘기해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랬다면 좀 부럽네 😝
아까 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를 읽으니 새삼 그때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그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뭘 그리 많이 샀을까? 그 덩치 큰 카타르 선수들이 양손에 들고 오지 못하고 카트로 끌고 와야 될 정도로?" 돈이 참 많긴 많구나.
우리가 머무른 호텔은 내부 흡연 적발시 벌금 300달러가 부과되는 곳이었는데, 기름 부자 나라들은 그 정도는 우스운지 많이들 피워서 몇몇 국가가 벌금을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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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내가 그 호텔에 머물렀을 때와 같은 시점에 작성된 어떤 분의 후기 보니...😖 이런 피해를 끼치고 가다니. |
하지만 늘 돈돈돈...과 환불은 안 되냐?를 입에 달고 살았던, 산유국이지만 돈 없는 나라 이란. 강추위 속에서도 규칙을 지키기 위해 "츄리닝" 하나 입고 담배 피우러 밖에 나가던, 규칙 잘 지키던 선수들이 떠오른다. 다른 중동국가와 달리 '눈 쌓이는 겨울'이 있는 나라인데 다들 어찌 그리 얇은 옷만 가져왔는지... 애처롭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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