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았다"고 하는 것의 허상




외국에 나가기 전에 환전을 하면서 체크카드 하나를 새로 만들었다. 
해외 사용 금액의 1.5%를 환급해주고, 그 외 국내에서는 음식점, 병원 등에서 쓴 금액의 0.5%를 캐시백해준다는 카드.
은행원이 카드 안내 설명서를 출력해주면서 "출국 전에 카드 승인이 제대로 되는지 국내에서도 한 번 써보시고 나가세요" 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비빔밥이 8000원이기에 그 새로 만든 카드로 지불하고 이른 점심을 해결했다.
'원래 공항에서 밥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만 뭐 출출하기도 하고, 카드 점검도 할 겸 잘 됐네... 0.5%라도 할인 받고.'


해외에 나가서도 내가 결제한 것에 수수료가 어떻게 붙는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환급이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몇 번이나 카드 안내서를 들여다 봤었다. 


시간이 지나, 저번 달에 쓴 비용이 환급되는 시기가 되었는데, 해외 사용분은 1.5% 잘 환급이 되었는데 공항 음식점에서 사용한 것은 환급이 되지 않았다. '항상 모든 룰에서 예외가 되는 '공항'에서 먹어서 그런가?, 분명히 카드 전표에 음식점이라고 표시가 되는데 환급이 안 됐네?'


무슨 이유일까 하고 다시 한 번 그 카드 안내서를 읽어 보니 지난 3주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몇 번이나 읽어 보던 내용 바로 아랫 줄이었다. "만원 이상의 사용 금액에 한함" 😳

내가 먹은 비빔밥은 8천원이었기에 전혀 환급 대상이 아니었던 것.
정말 신기했다. 그 안내서를 수십 번 읽어보는 동안, 다른 글자들과 똑같은 크기로 중요하게 써져 있던 내용이 어떻게 한 번도 보이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관심이 있는 것을 보는 동안 바로 옆에 있는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수도 없이 들어보고 직접 경험한 사실이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한편으로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나 그거 못 봤는데? 라고 말했던 일들, 혹은 범죄 현장에서의 중요한 증언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보려고 하는 것만 보일 뿐, 현실에 멀쩡히 있어도 안 보이는/ 안 보는 것들이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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