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돌이켜 보니, 난 형제 덕에 모바일기기 굉장히 일찍 쓰기 시작했는데
내 힘으로 후속 모델을 마련해야 할 때는 돈이 없어서
그뒤로 최신 모델은 한 번도 사용 못해봤네.


올여름쯤부터 드디어 도저히 쓰지 못할 지경이 된 6년 된(!) 아이폰을 꾸역꾸역 몇달간 더 써오다가
(남 앞에 폰을 내밀지 못할 정도의 외양 ㅎㅎ)
아까 새벽에 알뜰폰 사이트에 들어가서 가장 저렴한 버전의 갤럭시폰을 신청해버렸다.
사실 8-9년 만에 안드로이드 계열은 처음 써본다.

어차피 누구나 할부로 쓰는 폰, 나도 빚(?)을 내서라도 적어도 아이폰XR정도로 바꿀까 고민하다가
모든 고민이 다 귀찮아서 갤럭시 염가 모델로 냅다 신청해버렸다.
안드로이드는 앱을 어떻게 구입하는지조차 아직도 모르지만, 다행히 저번 겨울에 갤럭시 폰을
가지고 알바를 한 적이 있어서 사용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알았다.
(내가 앱을 깔아 보진 않음)



돈을 제대로 못 버는 사람의 상징이, 최신형 전자기기를 갖지 못하는
점이라는 게 새삼 느껴진다 ㅎㅎ.


그러고 보면, 난 모바일 폰 자체는 언니 덕에 누구보다 빠르게 썼다.

1998년 대학생 때 사용을 시작했는데
못 믿겠지만, 그땐 다들 '굳이 일반인이 왜 핸드폰을?' 이러던 시대였다.
언니에게 폰이 생겼는데 아빠도, 언니도, 안 쓴다고 해서 내가 냉큼 벽돌만한 '애니콜'을 접수했다.
60여 명 가까웠던 우리 반 (나는 ㅇㅇ학부 1반이었다) 동기 중에
내가 세 번째 정도로 핸드폰을 쓰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졸업 후로, 회사를 다니기도 했지만
한 번도 큰 돈을 제대로 벌어본 적 없던 나는
늘 저가형 폰을, 그리고 그 폰들이 거의 산산조각(literally) 나기 전까지 써왔다.

최근에도 폰이 갑자기 꺼지거나 쓸 수가 없어서 머쓱머쓱해지는 순간을 마주할 때는
동시에, 여태 타인의 이해할 수 없던 행동의 원인도
나처럼 '가난'일 수 있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돈이 없어서 나 그거 못해' 라고 말하기란 어찌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말없이, 다른 핑계로, 쭈뼛쭈뼛 피해야하는 것.

그리고 스마트폰의 '전화 연락'이라는 기능보다 카메라 성능이 더 중요한 요즘, 폰이 점점 낡아갈수록 쭈뼛쭈뼛 미적미적 사진을 잘 안 찍게 되지만, 새 폰으로 바꾸고 나면 다들 신기함에 사진을 평소보다 더 많이 찍는다는 것도 알았다.


동생 회사에서 준 노동절 선물이 내 소유가 되면서, 아이패드도 남들보다 꽤나 일찍
쓰기 시작했지만, 후속 모델을 구입할 여력이 없어서 그 오래된 모델을
오래오래 쓰다가 이번에 떠나보냈다.

사실 멀쩡하게 실행은 잘 되는데, 배터리 충전기를 꽂는 부분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 충전이 되지 않는다.
수없이 떨어트려도 잘 살아남았던 아이패드지만
어느날 새벽의 낙상 충격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충전이 되지 않는다.

하도 오래 써서 늘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갑작스레 떠나갔다.
사람을 떠나보낼 때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부분은 멀쩡하더라도 특정 장기의 부전이 오면, 그게 마지막인 거,
그리고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해왔어도, 마지막 순간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 등등.


그래도
멀쩡히 회사 잘 다니는 친구들도,
폰 잃어버리거나 고장이 나면 한동안 카톡 프로필에
"폰 고장 ㅠㅠ" " 당분간 확인 어려워요" 이런 메시지를 남기는 걸 보면
모바일 폰이 고장났다고 해서 당일에 새 폰을 척척 구입할 만한
그런 재력을 가진 사람은 별로 많지는 않다는 것을 위안 삼아야지.

내 마음을 어찌 알고 꾸역꾸역 버텨주었던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내구성에는 정말 감탄했다. 언니가 LG의 팬이라서 석 대째 LG폰만 쓰지만, LG폰은 2-3년이 지나면 그냥 못 쓰는 폰이 되어버리는 것을 보아온 입장에서.....내가 아이폰11은 아니라도 XR정도는 구입해야 되나 고민했던 이유였다. 앞으로 '6년'은 쓸 테니... 😅  이게 더 실속있지 않나 싶어서.
다음에 '돈 벌면' 최신 아이폰 사야지...흑흑.


십수년째 최신폰은 한 번도 못 써봤지만
뭐, 인생의 우선 순위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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