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전 사람들..




2013.12.16 17:44 


나는 한 학년에 500명 가까운 정원이 득시글대는 대형 학부제 단과대를 다녔다. 출처는 기억도 안 나지만 누군가 했던 말....

"이런 대형 학부의 특징을 보니, 극소수의 똑똑한 애랑 소수의 진짜 바보들 빼고는 다 점수 대충 맞춰서 온 어중이 떠중이들이야."
가 맞는 말 같다.


난 그 어중이떠중이 중의 하나였다. 워낙 대형학부이다 보니 외부에서 보는 시선만큼의 엘리트집단 같은 건 꿈도 못 꿀 정도로 학생들간 편차가 컸다. 고등학교에 비해 대학은 비교적 비슷한 학생들로 걸러지게 마련이지만 그런 느낌도 안들었다. 몇몇은 자신이 그런 사람이리라 착각에 빠져 살았겠지만, 단과대를 관통하는 유명한 사람도 없었다.

어떤 일 관계로 같은 대학을 다니는 두 살 어린 타계열 남학생을 소개받을 일이 있었는데, 걔네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호호호...우리 애가 학교를 하도 열심히 다녀서 좀 유명해요. 아마 만나보면 누군지 알 거예요.호호호"

아무리 학교를 열심히 다녀도 학교 전체에서 유명한 학생은 절대 존재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는데...이 엄마의 자신감은 뭐란 말인가. 역시나 얼마 뒤 그 학생을 만나보니 전혀 알 수 없는 학생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학생 이름이 "총학생회 문화국장"이런 데에 올라있는 걸 보았지만, 사실 그 학교 문화국장이 누구인지 아는 학생들은 총학생회 그 학생들 뿐일 거다. 그냥 그 엄마의 아들 사랑이 대단함만을 확인하는 계기였을 뿐이다.

어쨌든, 내가 다닌 곳은 아주 대형학부라서 알고 지내는 인원은 한정적이었다.
그래도 이름이 아주 특이한 몇 명은 한 번 이름을 들은 것만으로도 기억에 남았다.
대형강의는 몰라도 특히 제2외국어 수업 같은 거 할 때, 항상 이름을 불러서 출석체크를 했기 때문에 여러 특이한 이름들이 기억에 남는다.
얼굴은 모르지만 십여 년이 지나도...'아.. 이 친구 같은 학부 다녔지...'하고 알 수 있는 이름들이 있다.


내가 학교다니면서 '특이하네'라고 생각했던 이름의 주인들은 신기하게 주로 언론계에 포진하고 있다.
(랑, 란, 시행...이런 이름. 얼굴은 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름만 익숙했다.)

동생이 이사 나가면서 버리고 간 어떤 책을 보다가 그 책의 저자가 익숙한 이름인 것을 보았다.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역시나 같은 학교 출신이다.

'에고..내 동갑내기는 책을 내고 있구나...'

약간의 자괴감도 든다.
그러다가 혹시 같은 학부를 다녔던 얼굴 모를 누군가도 혹시 내 이름을 기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름이 약간 특이한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와 이름이 같은 '살아있는' 사람을 눈앞에서 본 적이 아직 없다. 물론 국내 어딘가에는 있지만
예를 들어 "김영희"는 살면서 수도 없이 영희를 마주치지만 나는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다.


아주 오랜 뒤에,
내 이름도 어딘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 이 친구 나랑 같은 학교 다녔는데...?'하고 발견될지,
아니면
지금처럼 조용히 사라져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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