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한 영어 실력으로 통역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내 전공 중의 하나가 영문과라는 이유 때문에 종종 부탁을 받는다.
내가 내 실력을 잘 알기에, 통역까지는 못 한다고 거절을 했는데
부탁한 쪽이 "어차피 상대방도 영어 능통자가 아니니 대충 하면 된다" 라고 꼬셔서 결국은 하게 됐다.
거의 처음으로 번역이 아닌, 말로 하는 통역을 하게 되어서 (나는 그나마 영->한 문장 번역은 쉽다고 느낀다. 한->영은 좀 더 서툴고) 많은 어려움을 느꼈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 사실 그 일을 했던 2주는 최근 몇년간 인생 경험 중에서도 꽤나 행복한 하루하루로 기억에 남아있다.
아무튼 시간이 끝나갈수록 내가 통역을 맡았던 사람들에게 감사함이 느껴져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감사 인사 스피치를 내 스스로 하고픈 맘이 들게 됐다.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하다 보니 잠깐, 근데 내 임무가 영어로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translator라는 보편적 단어가 있었지만, 어디선가 말로 하는 통역과 translator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자료를 좀 찾아보려 했으나 딱히 확실한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용례를 보고 interpreter가 지금 내 상황에 더 맞는 것 같아서, 감사 인사를 하면서 "interpreter를 해보긴 처음이라 너무 서툴렀다. 잘못한 게 있다면 미안하다."라고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기생충 영화팀의 통역을 맡은 샤론최 씨가 엄청난 실력으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대부분의 외국 매체가 그녀를 translator로 소개하고 있었다.
갑자기 2년 전의 일화가 떠오르면서 '그냥 다들 translator라고 하는 걸 쓸데없이 고민했네. 이런 것도 확실히 모르는 영어 실력으로 어딜 가서 뭘 하겠다고...'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른 내용을 트위터에서 찾아보다가 내가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을 우연히 얻게 되었다. 이 경우에는 interpreter가 엄밀하게는 맞긴 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bbc, 뉴욕 타임즈도 틀리게 쓸 정도로 외국인도 그냥 구분없이 섞어서 쓰는 단어인 듯 하다.
이런 지적은 "Pedantic"이라는 비꼼을 당하긴 하지만 ....
Translation 은 쓰여진 것을 번역하는 것에 한한다.
아래 댓글 표현도 덕분에 새로 배웠는데..."who honestly gives a toss" 라고 하면 "그런 거 누가 상관한다고..." "그런 거 따지는 사람이 솔직히 어딨냐?" 이 정도의 의미를 가진 영국식 영어다.
그래도 내가 잠깐 동안 "interpreter"였다는 게 맞긴 맞았네.
하지만 대부분이 그냥 translator라고 부르며, 한국에서도 맞춤법 같은 거 교정해주면 불쾌해하는 사람 있듯이, 이것도 틀렸다고 말하면 '뭘 그 정도 가지고...'라는 반응이 돌아오는 사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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