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자부심



2015.03.18 17:13 

스리랑카는 영국 식민지를 거친 국가로, 많은 국민들이 영어를 잘 구사한다.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나이 많으신 어른 중에 일본어에 능한 분이 있는 것처럼, 스리랑카도 식민지 시대를 거친 나이 많으신 분이 오히려 더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기도 한다는 얘기도 있고.


젊은 층 중에서도 대학교에 진학할 정도의 우수한 학생의 경우에는 영어를 상당히 잘 구사한다. 고급 비즈니스 영어 사용층은 우리 나라와 영어 구사 수준이 비슷하겠지만 길거리에서 내가 그냥 마주칠 수 있는 사람, 택시 기사, 가게 주인들의 영어 실력은 한국보다 스리랑카가 더 낫다.


어떤 분들의 영어 자부심은 대단해서, 스리랑카 영어 발음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는 스리랑카인을 만났다는 친구도 있었다. 스리랑카 특유의 영어 발음(V는 W와 서로 철자를 바꿔 쓸 정도로 똑같다고 생각, V발음 따로 안 가르침(navy = 네위). Z 발음도 따로 안 가르치고 그냥 간단히 Z=S (zoo = 수))이 있는데도 말이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도 사실 F, V, Z 발음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다른 나라 뭐라할 것은 없지만, 한국 영어가 최고라는 자부심은 한국인 누구도 갖고 있지 않는 것에 비하면 상당한 자신감.


본인의 영어가 완벽하다는 학생들의 자부심도 대단해서 내가 문법을 고쳐주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아니, 내 말은 거의 듣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1.

 스리랑카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한국어캠프를 진행하고, 한국어과의 우등생들이 신문에 기고할 기사를 써왔다.
"many students were participated in this camp" 이런 식으로 문장이 되어있어서 이걸 수동태로 굳이 쓸 이유가 없으니 were를 빼도 되지 않냐고 했더니, 수긍을 못 하고 안 고치겠다고 함.


2. 

한국 학교에 지원서를 쓰던, 영어를 상당히 잘 하던 학생.
"Audience is been taken........"라고 써와서 is를 바꾸거나 been을 빼라고 했더니 학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안 고치겠다고 버팀. 내가 그냥 포기.


3. 

몇년째 한국에 보내는 공식적인 추천서에 "이 학생은 한국어와 심리학를 전공하고 있다." 라는 내용이 "She is offering Korean language and psychology."이런 식으로 쓰여져 왔음. 영국이나 랑카의 어디선가는 이렇게 영어를 쓰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한국에 보내 한국인 심사자가 읽게 될 서류이고 한국인으로선 듣도보도 못한 로컬(?)영어라서 내가 다 고쳐줬는데, 나중에 최종 제출 추천서를 보니 학생이 다시 she is offering으로 고쳐놓음. 🤐



음....내가 잘 몰랐던 문법 사항이라면 누가 좀 알려주세요.
내가 틀린 건가???
내가 한국어과 강사이긴 했지만, 나름 영문학 전공한 선생님인데, 눈 작고 얼굴 노란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내 영어를 안 믿는 게 조금은 섭섭했음. ㅎㅎㅎ 내가 한국인이니까 한국어에 대해 틀린 것을 지적하면 두말없이 고치는데, 영어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고집을 피우는 것을 보니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큰 듯.


물론, 내가 문법을 몰랐던 사례도 있다.
학생이 휴대전화 잔액이 부족해 답이 늦었다면서 'I haven't money'라고 문자를 보내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영국에서는 이렇게도 쓴다는 증언이....


2021년 추가.
위의 1번 사항의 경우는 십여 년 만에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다. 

스리랑카어에서 "참가하다"라는 동사 자체가 수동형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영어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스리랑카식으로 생각해서 번역투로 문장을 썼기 때문이었다. 
스리랑카어에서 "참가하다"는 සහභාගී වෙනවා인데, 이 동사형 자체가 සහභාගී(참가) වෙනවා(되어지다) 로 구성됐다. 그래서 스리랑카인이 생각하는 '참가하다'는 be participated 였던 것이다.
스리랑카의 '하다' 동사인 කරනවා를 쓴 [සහභාගී(참가) කරනවා(하다)]라는 동사는 오히려 남을 '참가시키다'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냥 participate라고만 쓰라고 했더니, 스리랑카식으로 머리속에서 번역한 영어를 받아들인 학생들이 그 의미가 아니라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던 모양;;;; 

결국 나의 스리랑카어 실력이 부족해서 그때 학생들을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이 단어를 그때 제대로 알았다면, "아무리 스리랑카어가 그렇게 되어있어도 영어는 영어식으로 써야지"하고 가르쳐줄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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