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사실상 나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스리랑카에서 아마 죽었을) 우리 고양이만 보고 싶을 뿐, 그리운 사람은 없다.

그래도 다시 한 번,
테니스 선수를 지난 십여년 간 '불가사의하게' 응원하며 그 선수의 부침에 따라 같이 울고 웃고 했던 것에 감사하게 된다.
나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행복을 질투하지 않고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줘서. 
긍정적인 기분으로 한 사람을 지켜볼 수 있게 해줘서.


이런 생각을 지금 다시 하는 이유는,
70대이신 엄마가 너무 안타까워서.
유투브에 중독되어, 그들이 전파하는 말만 믿고 계시는 우리 엄마.
엄마가 싫어하는 정파에서 한 일은 무얼해도 다 싫을 뿐이고, 모든 것을 다 공산주의, 빨갱이, 좌파라는 프레임으로 보신다.
우리 엄마는 종교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 분이셨는데, 지금 유투버들의 말을 종교처럼 떠받들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 아시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이 교회 예배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쉽게 '헌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이유는 '세뇌'가 약해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봤다. 매주 사람을 불러 모아 자주자주 세뇌를 시켜야 하는데, 예배를 건너뛰다 보면 사람들의 믿음이 약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교회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매일매일 준비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논리로 보자니, "유투브교"는 뭐 24/7 사시사철 세뇌에 가장 좋은 도구였다. 쿼런틴에 락다운이 걸려도 여전히 돌아가는 그곳.
이렇게 자신들의 사상을 손바닥 위에서 전파하는 유투브 채널들은, 종교적인 것에 냉담하던 우리 엄마도 쉽게 신자로 포섭했다.


어차피 70년 넘게 살아온 배경, 믿음...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나이 들면 즐길거리가 점점 줄어드는데, 유투브 시청이나 카톡을 통해 넘나드는 음모론 전파 이상 가는 재미있는 스포츠도 어르신들께는 없을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한 가지 너무 아쉬운 건,
인생의 말년을 누구에 대한 지독한 증오로 보내신다는 것. 그게 너무 안타깝다.
우리 엄마는 목소리가 크신 편인데, 거실에서 전화하는 소리가 내 방까지 다 들린다.

"아유, 언니...요즘 어때? 속상해 죽겠어"
"아유... 이 난리통에 어떻게 지내? 정말 정부 꼬라지 때문에 열받아 죽겠지?"


이번 정부가 무얼 하더라도 엄마의 증오 대상이란 걸 알고, 어차피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중도를 유지하는 사람에겐 지옥의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가 준비되어 있다는 말도 알지만.... 대충 나는 정치인 모두 맘에 안 들고 어느쪽에도 관여하고 싶지 않은데, 나와 다르게 우리 엄마는 정치 전사로 인생의 말년을 보내게 되실 줄은 몰랐다.




느긋하게 인생을 관조하며 보내게 될 줄 알았던 인간의 노년이, 음모론과 선동, '이걸 설마 믿나?'싶은 걸 믿는 흐려진 판단력과 함께, 증오와 혐오로 채워진다는 것을 생각하니 너무 갑갑하다.


꼴보기 싫은 사람 같이 욕해주는 유투브에 젖어 살기보다
좋아하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며, 추억에 같이 행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서 다행이다.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면서 살기에도 예측 불허인 이 세상에
혐오와 짜증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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