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향수' 반열에 올랐다는 걸 알기 살짝 전 2007년,
면세점에서 시향해보고 단번에 반해서 스리랑카로 2년 떠날 때 사갔던 향수, Éclat d'Aepège.
요즘은 가난해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기분 전환용으로 향수를 사는 편인데
향수를 조금씩 맛보던 미니어처 구입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향수 한 병'을 그렇게 꼬박꼬박 사게 된 시발점이 된 향수가 이 향수 아닌가 싶다.
향수를 조금씩 맛보던 미니어처 구입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향수 한 병'을 그렇게 꼬박꼬박 사게 된 시발점이 된 향수가 이 향수 아닌가 싶다.
나도 단번에 반했고, 이 향수가 "국민향수"라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고 취향을 타지 않는, 다들 쓰는데 거부감이 없는 대중적으로 무난한 향수라는 이유 때문에... 결국 조금은 불쾌한 추억이 남고 말았다.
스리랑카에 도착해서 몇주간은 홈스테이를 거치게 되는데, 사실 한국인들이 일반 스리랑카인의 집에서 금방 적응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므로 어느 정도 상류층 가정에 배정되게 된다.
나는 사춘기 딸내미 두 명과 막내 아들이 있는 집에 배정이 됐는데, 원래 비어있던 방을 주는 게 아니라 큰딸이 쓰던 방을 임시로 나에게 내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2주 정도 홈스테이를 하면 기관에서 스리랑카 노동자 한달 월급을 훌쩍 넘는 돈을 가정에 주므로, 2주쯤 방을 비워줄 수 밖에 없겠지 🤗)
큰딸이 드나들면서 옷장에 남아있는 자기 물건을 쓰기도 해야 했기 때문에, 프라이버시가 너무 없는 게 좀 단점이었다.
얼마 뒤, 더 큰 단점이 불거졌는데....
나는 처음에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너무 믿은 나머지, 내 모든 물건을 꺼내어 내 방과 화장실에 늘어놓았다. 그런데 내 모든 물건들의 양이 줄어들고 있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화장실에서 호스를 이용해 물줄기로 수동 뒷처리를 하기 때문에 휴지가 없다. 내 여행용 클리넥스를 화장실에 갖다놓았는데, 이 휴지의 양이 뭉텅이로 줄어들었다. 대체 왜? 뭘 하느라?? 평소엔 화장실에서 휴지를 쓰지 않는 사람들인데???
심지어 화장실에는 그들의 치약이 있었는데도 내 치약의 양마저 엄청 줄어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화장실에는 그들의 치약이 있었는데도 내 치약의 양마저 엄청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책상 위에 늘어놓고 갔던 내 화장품들은 내가 스리랑카어를 배우러 학교에 다녀오는 시간 동안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어느 날은 빨래를 하러 세탁기에 갔는데, 그 세탁기 위에 올려져 있던 둘째딸의 옷에서 내 향수 - Éclat d'Aepège - 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뿌린 거야?' 😬
차라리 그들이 언니, 언니~ 하면서 나에게 "써봐도 돼요?"라고 하면 충분히 쓸 기회를 주었을 텐데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남의 것을 마구 쓰고 있다는 게 화가 났다. 결국 그 다음부터 모든 화장품을 다시 가방에 넣고 자물쇠로 잠그고 외출할 수 밖에 없었다.
홈스테이를 떠나던 마지막 날, 그래도 좋게 마무리를 하기 위해 딸들에게 한국 화장품 페이셜 마스크도 주고 웃으며 떠나왔으나....
결국 나는 내 펜과 이어폰이 사라진 것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다. 으.... 손버릇 안 좋은 자매들.
심지어 내가 마지막 외출하는 날, 여행 가방 손잡이 양쪽에 묶어 놓았던 리본이 한쪽 손잡이에만 묶인 채로 내 다음 주거지로 배달되었다. 풀어본 것이 틀림없었다.
심지어 내가 마지막 외출하는 날, 여행 가방 손잡이 양쪽에 묶어 놓았던 리본이 한쪽 손잡이에만 묶인 채로 내 다음 주거지로 배달되었다. 풀어본 것이 틀림없었다.
그 리본을 보니, 결국 참을 수가 없어서 현지 사무소에 보고를 했다. 그냥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많은 문물을 가지고 온 언니의 짐을 탐하는 사춘기 소녀들의 일탈'로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었다. 결국은 나의 다음다음 기수부터는 홈스테이를 하지 않게 됐다. 사실 나 말고도 이런 일을 겪은 단원들이 좀 있어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그집에서 겪은 일이 떠올라 저 향수에 대한 인상이 나빠졌고 😔 Lanvin 향수를 꾸준히 좋아하긴 했지만, 에끌라 다르페쥬에 대해서는 잊고 살았다.
올해, 정말 오랜만에 시향용 2ml 샘플이 생겨서 뿌려보았는데, 옛날 만큼의 감흥이 없었다. 여전히 좋을 줄 알았는데, Lanvin 신제품이 더 좋다.
내 물건을 뒤져서 맘대로 쓰던, 랑카에 대한 내 호감에 첫 타격을 준 그녀들에 대한 실망은 이미 흐려졌지만... 그래도 이젠 2007년의 '그 후각'이 아닌가보다.
이 향수 정보를 찾아보면 '20대에 어울리는 향수'이런 말도 많고 10대가 입문 향수로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오래 전에 구입했던 경험 때문인지 이제는 뿌리면 너무 옛날 느낌이 난다. 이상해....
마치 기대했던 첫사랑과의 오랜만의 만남에서 뭔가 의문만 남기고 돌아오는 느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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