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TV NEWS 업계에서 일했을 때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방송 실수는 "컨텐츠"라는 자막이었다.
내가 담당한 자막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자막이 아니고 최소 10여 초 정도는 화면에 큼지막하게 앵커 얼굴 옆에 고정되어 나가는 자막이었다.
아마 원래 기사에는 콘텐츠로 되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에어컨' '리모컨' 등의 표기법을 참고해서 con은 표기법이 '컨'으로 통일되었나보다...하고 '컨텐츠'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자막을 고쳐서 나가도록 문서를 전달했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야 남자 앵커가 "야, 이거 콘텐츠 아니냐 누가 한 번 찾아봐라" 하는 걸 설핏 들었다. (굉장히 업무 초기라 아마 앵커는 내가 누군지도 모를 때라서, 나를 지적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별로 신경쓰는 사람은 없는 듯 했지만 나만 혼자 당황해서 찾아보니, '콘텐츠'가 맞았다. 😱
된소리를 다 표기할 수 있는 자음을 가지고도, 라틴 계열 언어들의 "아르헨띠나" "이딸리아" 를 모두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로만 표기하도록 되어있는 등, 현 표기법이 실제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외국어 표준 표기법은 생각보다 정교하게 정해지는 것이었다. 그냥 "con은 《컨》으로 적습니다" 이런 게 아니었다.
content의 경우는 한국에서 주로 쓰는 용례가 '내용물'이란 뜻의 명사인데 그러면 단어를 읽을 때 강세가 앞에 위치하게 된다.
✔명사일 때
content
noun
UK /ˈkɒn.tent/ US /ˈkɑːn.tent/사실 한국어 발음으로 똑같이 옮길 수는 없지만 영국식 콘텐트, 미국식 칸텐트에 가깝다.
✔ 형용사일 때
content
adjective
UK /kənˈtent/ US /kənˈtent/만족하다-라는 뜻의 형용사로 쓸 때는 강세가 뒤로 가게 되는데 이 때는 발음이 con소리가 약해지면서 컨(큰)텐트가 된다.
강세 위치에 따라 발음이 달라진다는 것은 사실 네이티브가 아니고서야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많이 잊어버린다. 학창 시절에 배우긴 배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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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가 뉴스에 흔히 쓰는 cóntents(명사)의 국제 발음 기호에 따른 표준 표기법은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이 단어가 형용사로 쓰일 때의 표기법이었다면 컨텐트로 표기가 정해졌을 거다.
당시에 생각보다 정교하게 표기법이 정해져있는 것에 놀랐었다.
갑자기 이 일화가 떠오른 이유는 요즘엔 누구나 "컨텐츠"로만 쓰는구나...하는 걸 느껴서.
사람들이 표기법을 몰라서라기보다는, 묘하게 어감이 '콘'이 더 촌스럽기 때문인 것 같다.
'콘벤션 센타'는 예스럽게 느껴지고 '컨벤션 센터'가 좀 더 세련되게 느껴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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