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벌써 15년이나 된 테니스 나달 응원.
나달은 지난 8월 고질적인 발 부상으로 절뚝이며 경기를 마친 후 거기서 한 해를 접었다.
재활과 훈련 끝에 2022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러 현재 중동에 와 있지만 (북반구의 주요 도시가 추운 12월-2월에는 중동이나 호주, 남아공 등에서 경기가 열린다) 생각보다 덤덤하다. 저번 8월만 해도 다시 경기를 볼 생각에 설렜던 것 같은데...
2019년쯤... 왠지 Big 3 경쟁에서 나달이 밀리는 것 같았을 때, '우리 애만 서울대 못가나?' 비슷한 조바심이 나는 날 보면서 내가 나달을 아들 키우는 것처럼 응원해왔구나...하는 걸 깨달았지만
한편으로는 15년 사귀어서 덤덤해진 남자친구, 15년 같이 살아서 이젠 그러려니 하는 남편같아졌나 싶기도 하다. 더 잘했으면 좋겠지만 이젠 알아서 하겠지...싶은??
콩깍지가 벗어지고 단점만 자꾸 맘을 후벼파는 오래된 연인처럼, 최근 나달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선택을 내리는 일이 종종 생겼지만 한편으론 얼굴 주름이 많아지고 머리숱이 적어진 그를 보면 뭔가 측은지심이 들기도 하고.... ㅜ.ㅜ 부부들도 젊을 때야 싸우고 밉고 하지만 나이들면 서로 측은해보여 동지로 남는다는 얘기도 하던데.
예전에는 코트 끝에서 끝까지 뛰면서 모든 걸 다 받아내는 나달의 플레이가 좋았지만 요즘은 '으으 뛰지마 뛰지마' 소리가 맘속에서 절로 나온다. 나이 들어 애처롭다.
모든 인간관계에 흥망성쇠가 있는 것처럼...
뛰어온 날보다 앞으로 뛸 날이 적은 운동선수, 뭔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80대가 되어도 무대에 설 수 있는 클래식 연주가를 좋아하는 마음과는 다르다.
5시간 준결승 혈투를 벌인 뒤 단 하루만 쉬고, 이틀 쉬었던 상대 선수와 서너 시간 결승 경기 해서 기어코 우승하던 팔팔했던 그 나달도 이제 시즌의 반을 부상으로 날리는 노장이 되었다. 언젠가는 프로 투어에서 나달을 볼 수 없는 시간도 오겠지. 불타는 사랑은 사라져도 한 사람의 부재는 너무 어색할 듯 하다.
신예 선수가 스르르 떠오르고 그들의 팬층이 새로 유입되는 것을 보면서, 그 팬들의 트위터를 보면 중년 부부가 된 내가 신혼부부의 아기자기함을 훔쳐보는 기분이다 :) 젊음과 그 일희일비가 부럽다. 오래 된 사이는 일희일비할 일도 없다. 그러려니...하고 받아들이게 되니.
새로운 팬들에게도 내가 십여 년 겪어온 즐거움과 고통의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첫 윔블던 우승의 순간, 첫 US 오픈 우승의 순간, 모든 의심과 고통을 뒤로 하고 5시간의 처절한 전투에서 이기는 순간, 뼈아프게 패배하는 순간....
그리고 또 세월이 흐르면 그들도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는 아줌마가 되겠지 :) 어떤 관계이든 평생 행복할 수는 없고... 서서히 줄어드는 희열의 강도와 빈도를 체감하는 중.
많이 내려놓은 것처럼 썼지만 사실 진심은
이젠 안 될거라 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귀신같이 메이저 우승 실력으로 돌아왔던 2017년처럼
2022년에 다시 나달이 매섭게 돌아오는 것이다. 페더러도 36세까지 메이저 우승을 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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