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하늘이 파랗고 예쁜 날
노을이 감탄하도록 아름다운 날
눈이 펑펑 내리는 날
하늘이 잘 보이는 고층 건물의 통유리창 카페 같은 곳에서 밖을 보며 한참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일기예보가 있어도 시리게 파란 하늘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도 더 예측 불허였으며, 어둡기만 한 내 방에서 노을이 예쁘다는 걸 알게 되는 건 남들이 올린 사진을 보고 난 - 해진 뒤 한참 나중일 뿐이었다. 눈이 펑펑 오는 날은 외출도 어렵고.
그런데 운좋게 그 기회가 왔다.
고층 건물에서 통유리창으로 펑펑 내리는 눈을 보는 일.
나는 일기 예보를 꼭 확인하고 외출하는데 오늘따라 왜 눈이 오는 걸 몰랐을까.
그래서 더 즐거웠다.
집에 돌아온 뒤
한참 뒤에야 내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놀랐다.
나는 눈이 내리던 그 시간 동안 창밖을 보며 상념에 잠기기보다
사진 찍기에 바빴다. 그게 다였다.
원하는 사진을 다 얻고는 호주 오픈 테니스 경기를 시청하느라 다른 걸 못했기는 한데, 나에게 언제 또 그렇게 눈이 오는 날 고층건물에서 눈 오는 걸 뚫어져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그 시간에 사진 열심히 찍은 기억밖에 없네?
늘 사진보다 내 머리 속에 담아올래... 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젠 어어어 이건 찍어야 돼, 아아아 이건 남겨야 돼 이게 전부인 사람이 되었구나.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게 아니라 사진이 남았으니 그 순간은 그걸로 족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참 나도 모를 일이다.
사실 손 안에 쥔 폰으로 인해 사진을 찍는 일이 그냥 삶의 일부분이 된 것이 대세이지만
내가 사진만 많이 찍는 행위에 굳이 거부감이 있었던 것은, 뭔가 증명을 남기지 않고도 '그 자체로 행복해지고 싶은' 강박 때문이었던 듯 하다. '이 순간을 한 장으로 영원히 소유' 혹은 '이 순간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도 나 혼자서 만족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뭔가를 보면 내 머리속에도 '이걸 페이스북에 올려야겠다'라는 생각부터 퐁 떠오른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