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달을 처음 응원하던 시절을 생각한다.
2009년까지는 그랜드 슬램 결승전만 봤다. 20대 초반의 나달은, 기다리다 보면 결승 언저리에 가 있었으니까. 사실 2008-2009년 당시에 TV 없고 인터넷 연결 안 된 집에서 살고 있었던 이유도 크다. 보고 싶어도 '시내'에 나가지 않으면 볼 수 없었다 (21세기 맞음 ㅋㅋ).
언제부턴가는 웬만하면 모든 경기를 다 챙겨보기 시작했는데, 나달이 30대 중반에 돌입하면서 응원도 매우 괴로운 과정이 됐다. 아무리 '승패'와 상관없이 응원한다고 말은 해도, 패배를 지켜보는 게 기분 좋을 리가 없으니.
준결승/결승만 시청해도 나달을 거의 언제나 볼 수 있었던 시기는 지나, 이제 결승전엔 다른 선수들만 수두룩한 대회를 숱하게 경험하고, 지금 또 그랜드 슬램 대회 하나를 챙겨보면서 혼자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 "와... 아직도 결승 가려면 경기가 또 남았어. 결승에 간다면... 그걸 또 어떻게 감당해?" 마음 속 한켠에는 이젠 승패에 상관없다/자신있다/20대 애들처럼 뛸 수 있을까? 온갖 생각들이 오고 간다. 으아 그랜드 슬램 우승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구나.
물론 어렵다. 내가 애초에 나달을 처음 본 날 자체가 과정도 없이 메이저대회 '결승전'이었기 때문에, 그 후에도 결승은 당연했고 그동안 그 어려운 걸 모르고 아주 'luxury' 응원 생활을 해왔나 보다.
나달이 현재 4강에 올라있긴 하지만 나머지 선수들이 모두 20대 초중반이라서 걱정이 많다. 페더러는 만 35세에 2번, 36세에 1번 우승했지만 그땐 결승전 상대자들도 29-30세를 전후한 같이 늙어가는 나이였는데.. 나달은 이제 10살 이상 어린 선수들과 싸워야 해...흑흑.
365일 따듯한 섬마을에서 사는 나달은 더운 날씨 경기에도 상대 선수보다 잘 버텨냈었는데, 며칠 전엔 더위 먹어서 경기 중에 나가떨어질 뻔함. 본인도 놀랐을 듯.
나달이 작년 오랜 부상 공백에서 복귀했기 때문에, 해외 팬들 트위터를 봐도 다들 '뛰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모든 게 선물이다' 맘을 내려놓은 게 보이는데, 이번에 내가 왜이리 간절한지 모르겠다. 2009년 🏆 뒤 준우승만 4번...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목표 🏆이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오늘 반대쪽 드로 8강전 경기만 해도 예측과 전혀 다른 모양새가 많이 나왔는데, 앞으로 남은 나달 경기도 나의 애타는 마음과는 다르게 '의외로' 수월하게 풀리기를 기대한다. 유독 이 대회에서 마음 고생을 많이 했는데, 한 번쯤은 그 보상으로 행운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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