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을 앓고 있는 할아버지와 컵을 같이 쓰는 바람에 약물이 검출된 듯 하다."
종종 약물 복용 선수들이 적발되는 스포츠 종목 팬을 오래 해온 사람이라면, 이번 올림픽에서 나왔던 이런 류의 핑계가 아주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앓던 심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써오던 약이 걸렸다는 변명을 했으나, '그래서 그렇게 만성 질환 때문이라면 그 (적발된) 약 대신에 요즘은 무슨 약으로 그 병을 치료하고 있나?'라는 질문에는 답을 못했던 샤라포바라든지, 어머니가 파스타를 만드는 과정에 약이 잘못 섞여들어간 것 같다...라는 대담한(!) 핑계를 내세웠던 이탈리아 선수라든지. 저런 말도 안 되는 사유 발표는 아주 흔하다.
그러다가 새삼 내가 좋아하는 운동선수가 이런 일에 연루될까봐, 아주 우스운 핑계를 댈까봐 꽤나 두려워하고 있는 내 모습을 자각했다. 내가 선호하는 선수의 인성을 믿으면서도...
유명인을 좋아한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 한 켠으로는 그 사람이 사고를 칠까봐 걱정해야 하는 일 같기도 하다. 십수년 응원해온 일이 허무해질까봐.
이 구글 블로그로 이사오기 전...
내 블로그는 네이버에 그 선수 이름을 입력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블로그 중의 하나였다(2015년까지). 그래서 그랜드슬램 대회 기간 중에는 하루에 수천 명도 방문하던 블로그.
하지만 그때에도 '내 선수'가 뭔가 사고를 쳐서 실망을 줄까봐 걱정하는 맘이 있었다. 그래서 그 선수에 대한 포스팅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따로 묶어놨었다. 만약 실망스러운 일을 저지를 경우, 그 카테고리를 한 번에 삭제해버리기 위해서.
그래도 세상에 적어도 한 사람만이라도 좋은 사람이고 솔직한 사람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더더 크긴 하다.
한편으로는 약물 관련으로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나를 보면서 이렇게 사람을 못 믿어서 어쩌나 싶어 서글퍼졌다.
사실 나 말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데...
가까운 이들에 대해서도 신뢰가 별로 없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기반도 없이
위태위태 외로운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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