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던 6월 4일 오후



한참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던 그 정류장



구글지도 속 저 사진도 사진이지만
내가 버스를 기다리던 그 시점에도 저 가게의 마네킨들은 여기가 파리 맞나 싶게 촌스러운 옷들을 입고 있었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늘어나서 나는 가림막 아래 서지 못하고 오른쪽에 보이는 나무 근처에 서 있었다. 낮에는 날씨가 화창했었는데 호텔에서 롤랑가로스 여자 결승전을 보고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비 오기 전에 결승전은 잘 끝냈네. 비 예보가 있는 내일 남자결승전도 이래야 할 텐데.

어른들은 대부분 비를 그냥 맞는 편이지만
내 앞에 흑인(이런 단어를 굳이 쓰고 싶진 않지만 유럽에서의 경험이라면 푸른 눈의 금발 사람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모녀가 눈에 들어왔다.

어른은 비를 맞아도 꼬마는 비를 맞으면 안 되지.

가방 속 우산을 꺼내 나도 쓰고 내 밑의 여자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빛에 사랑스러움이 가득하다. 그만 쳐다볼만도 한데,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계속 나를 올려다본다. 단, 아이 엄마는 merci 한 두마디 할 뿐 그다지 고맙지도 않은 눈치였지만.

아주 늦게 버스가 왔고, 너무 간격이 길어서인지 내부엔 사람이 많다. 토요일 오후였는데 애초에 교통앱에도 detour라고 표시되었던 버스이고, 탑승하고 나니 뭐라고 뭐라고 계속 방송을 하지만 당연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익숙한 지명도 나오지 않으니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누군가는 탔다가 방송을 듣고 다시 내린다. 평소에 가던 곳으로 안 가는 버스인 듯하다.

파리에 온 첫날이었다면 거의 두려움에 떨었을 상황이지만 이젠 체류 아흐레째. 어디로 가든 내려서 다른 버스 갈아타지 뭐, 하고 그냥 버스에 몸을 맡기는 배짱이 생겼다.

지도앱을 켜고 천천히 경로를 보니 
원래 가야할 방향과 전혀 다른 길을 택해서 간다.
내가 도착 첫날 가려고 예약해뒀다가 취소한 호텔이 눈앞을 지나쳐갔다. 
그러다가 '뭐 유명은 하다지만 그게 뭐라고 거기 앞까지 찾아감??'이라고 생각했던 곳을 지나간다.



평소랑 다른 노선을 택한 버스 덕분에 볼 생각이 없었던 것까지 보게 됐다.😋

하나씩 하나씩 기억은 사라져가겠지만
지금 갑자기 그 여자아이의 행복한? 신기해하는? 눈빛이 떠올라서 글을 남겨놓는다. 

그 아이의 올려다보는 표정 덕분에 나에게도 그 순간은 좋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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