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고양이





나를 몇 번 졸졸 따라오던 고양이들이었지만, 결국 멀리 떠나간다는 걸 학습하고는
내가 자리를 떠나면 눈치껏 따라오진 않는다.

안 보는 척 하면서도 내가 떠나는 걸 보고 있는 고양이들이 애잔해서 뒤돌아서서 사진 한 장 남겼는데
빛과 배경의 효과로 그림처럼 잘 나왔다.



1번 고양이는 나를 가장 열심히 따라다니는 고양이로, 이 세 마리중에서 나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서열 1위다. 세 마리 중에 덩치가 가장 작고 중성화 수술 전에 암컷으로 짐작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서열 1위일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게도 1번 고양이가 내 곁에 있으면 다른 고양이가 다가오지는 않는다. 고양이들 사이에 어떤 암묵적 서열이 있는지 궁금하다. 


2번 고양이는 덩치가 더 크고 중성화 이전에 수컷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수의사 친구에게 판단 가능한 사진을 보여준 적 있음) 나무를 잘 타고 호전적인 모습을 많이 봤다.
그런데 1번 고양이가 내 곁에 있으면 항상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도 내 곁에 앉아있기는 한다. 1번 고양이와 친하다. 1번 고양이가 마실을 다녀오면 항상 2번 고양이와 얼굴을 부비며 서로 정보를 교환? 인사?? 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2번 고양이는 1번 고양이가 없으면 적극적으로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예전에는 소고기가 없으면 멀찍이 떨어져 앉곤 했는데, 이 녀석도 궁디팡팡의 맛을 알아버렸다. 요즘은 마사지를 좋아해서 이제는 먹을 것과 상관없이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나에게 관심없는 척 하면서도 여름이 되어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나가면 내 발가락에 그루밍을 해주는 유일한 고양이.


3번 고양이는 덩치가 가장 큰데도 뭔가 입지가 불안정한 고양이로 늘 보면 짠하다.
음식을 줘가며 거의 7-8개월만에 친해진 1,2번 고양이와는 달리
3번 고양이는 우리 엄마와 나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졸졸 따라다녔다.
늘 다리에 자기 몸을 비벼서 친해지려는 시도를 하는데, 요즘엔 내가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드디어 안 듯하다.
이상하게도 1번 고양이가 이 3번 고양이를 싫어하는데, 3번 고양이가 내 옆에 있으려고 하면 하악질과 냥냥펀치로 쫓아낸다. 너무 불쌍하다. 덩치가 더 큰데 맨날 맞는다.
"너 왜그래? 친하게 지내야지~" 내가 3번 고양이를 응징하러 가는 1번 고양이에게 말을 걸면서(??) 꼬리까지 잡아당기며 말려 봤는데 그게 통할 리 없다. 
인간의 방법으로 동물의 세계를 통제해보려 하다니... 내가 어리석지.
그래서 이 날도 1번 고양이에게 몇 대 얻어맞고 벤치 아래 숨어있는 거다. 

참... 그리고 사진에는 안 찍힌 의문의 4번 고양이도 여기 옆쪽에 있었는데
내가 가끔 음식을 공급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늘 거리를 유지하며 나를 지켜보고 있는 고양이다.
하지만 인간이 가까이 접근하는 걸 늘 불허하는데... 언젠가 친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래도 내가 노력 중이라는 걸 알고 있긴 한지...이 사진 찍은 날 10cm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나쳤는데 처음으로 호닥닥 도망가지 않았다. 그전에는 살금살금 조금씩 다가가서 1m 정도 가봤던 게 최고 가까운 거리였던 것 같다. 


2번 고양이와 3번 고양이는 가끔 공간을 공유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문제없어 보이는데
1번 고양이와 3번 고양이는 사이가 안 좋다.

1번 고양이는 4번 고양이도 싫어한다. 4번도 때리고 다닌다. 내 앞에서는 순한 양인데 (고양이 배 등등 신체 중 어딜 만져도 가만히 있음) 고양이 세계에서는 폭력 고양이네.


고양이들은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2번 치즈 고양이는 무슨 이유로 항상 1번 고양이가 내 곁에 있으면 그저 물러나서 순서 양보(?)를 하는지도 궁금하다.


늘 확실한 순서







댓글

  1. 고양이 친화적인 우리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고양이를 아끼는 '성인 여성'과 잠시 얘기를 나눠 봤다. 그전까지는 동네 아이들이랑만 얘기했었다:) 3번 고양이가 안 보인지 꽤 오래됐는데, 그 아주머니가 동물보호소인가 그런 곳에서 데려갔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하셨다. 다른 고양이한테 얻어맞고 입지가 불안해 보였는데 그걸 알고 있는 다른 눈도 분명히 있었나보다. 어디선가 안락한 삶을 살고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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