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아 그 기분



지금 서울에서 26년 만에 ATP tour 테니스 대회가 열리고 있다. 다음주에 도쿄에서도 더 큰 규모의 대회가 있어서 사실상 그 대회를 목표로 하는 선수들도 점검차 서울에 들렀다 가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보다 괜찮은 출전 선수 명단을 확보했지만, 개막을 앞두고 출전 의사 철회/기권이 속출했다. 바로 전 일요일까지 유럽-미국에서 대회가 열렸기 때문에 먼 아시아까지 날아오기엔 컨디션 조절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대회 전 스케줄상 문제로 기권도 아니고, 이미 한국에 입국해서 연습 중이었고 오늘 경기를 뛰기로 order of play에도 나와 있던 선수가 경기 출전 두어 시간 정도 앞두고 기권 선언. 사실 이런 경우는 흔한데 경기 전 연습 시간에 부상을 입었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복통이나 감기 등이 발생하는 경우다. 

이 선수의 기권에 대한 반응이 어떤지 궁금해서 트위터에 그 선수 이름을 입력해봤다.

아....

어떤 분이 이 분의 경기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 4시간 상경하고 있는 분이 계셨다. 그걸 시시각각 올리고 있는데... 아직 기권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

지난 5월, 나의 고뇌가 떠오르면서 이분이 앞으로 겪게 될 고통이 100% 그대로 다가왔다. 하필이면 서울 사람도 아니고 4시간 거리에 살아서 숙소 예약까지 했다는 분에게 이런 일이... ㅜ

나도 5월에 파리행 비행기표와 호텔 예약, 롤랑 가로스 입장권 예매를 마친 상태에서, 나달이 로마 대회에서 절뚝거리면서 괴로워하며 패배하는 걸 봐야 했다.

파리에서 있을 롤랑가로스는 출전이 불투명한 상태. 8년 만에 해외 관람 결단을 내린 건데 얼마나 우울하고 억울했던지... 무슨 인생이 나를 놀리기라도 하나? 그런 느낌. 

이미 수십만원을 들여 준결승 - 결승 표를 다 사놨고, 메이저 대회 결승전 관람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니 나달이 아닌 누가 올라와도 경기를 보기는 할 것인데, 혹시라도 맘에 들지 않는 선수가 결승에 올라왔다는 이유로 평소엔 관심도 없던 그 반대편 선수를 억지로 응원하며 경기를 보는 일이 생긴다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러면서 열흘 이상의 회복 기간은 있기에 간절히 기적이 있기를 바랐는데
6월 1일을 기준으로 모든 상황이 바뀌면서 정말 기적을 보고 왔다.

하지만 그 출발 전 나의 고통과 고뇌를 기억하기에
4시간 버스 여행 결단을 내리신 이 분이 앞으로 겪게 될 고통과 분노와 슬픔에 공감이 간다.

좋아하는 선수의 부상은 정말 팬들까지 뼈아프다.
아웅... 누군지 전혀 모르는 남이지만 내가 다 위로해드리고 싶다.

그리고
사실 한국에서 ATP 투어 대회가 열리기를 그렇게 간절히 기다렸는데 막상 실현이 되니 그렇게 구미가 당기진 않는다. 크게 선호하는 선수가 한국에 오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그런 선수들 간의 경기를 '경험 삼아' 앉아서 본다고 해도 그렇게 재밌진 않았다는 것을 5월에 파리에서 이미 알았기 때문 ㅎㅎ 결국 내가 좋아하는 선수의 경기를 봐야 애가 타고 흥미진진한 법.

올해 3월에 데이비스컵 서울 예선을 현장에서 보게 되었을 때는 코로나 상황에서 너무 오랜 만에 '관람석'에 앉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나마 신났었는데, 9월이 되니 그렇게 관심이 생기지 않는 건...올해는 이미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는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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