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끝판왕 은둔 고양이가 있다.

엄청나게 생활 영역이 넓은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대부분 특정 한 동 앞에서만 발견된다.

그래서 내가 '오래 전 찍어놓았던 사진과 비교대조' 끝에 2013년에 그 자리에서 본 것과 같은 고양이라는 걸 2021년에 알게 됐다. 길고양이가 8년을 살아남다니...




아파트 1층 베란다 아래쪽 어두운 곳에만 주로 기거하는데, 그래도 박스가 놓여있고 사료통이 놓여있다. 그러니까 10년 가까이 살아남은 것이겠지. 사람이 다가가면 부리나케 도망가지만 어떤 분이 사료통을 갈아주자 그 옆에선 가만히 있는 것으로 봐선 신뢰하는 인간과의 관계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위의 두번째 사진이 보여주듯이 나같은 사람은 멀리서만 볼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면 도망간다.


그래도 몇번씩 음식을 던져주면서 신뢰 관계를 가져보려 했고, 저 고양이도 가끔은 내가 지나갈 때 "냥!"하고 소리를 한 번 낸다. 그 소리 때문에 '이번엔 괜찮다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고 살짝 가까이 가보면 여지없이 도망간다.


그런데 오늘은.... 

자동차 아래 숨어있는 그 냥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또 "냥!"하더니 도망가지 않는다. 손에 맛있는 걸 들고 있었기 때문인가? 냄새를 맡고? 하지만 여태 음식으로도 안 넘어오던 냥이인데?? 하지만 먹을 것을 조금 던져주니 차 밖으로 나온다. 



내가 보는 앞에서 음식을 먹은 건 처음이다


거리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덜어줬는데, 신기할 정도로 내 근처로 다가온다.

드디어 50cm정도는 접근을 허용하는 듯.

그런데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매끈한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자세도 너무 꾸부정하고 털도 고르지 않고 너무 안타깝다. 우리 아파트에만 9년 넘게 살았으니, 인간 나이로 보면 노년에 접어드는 나이이기는 하나...




이번에 맛있는 걸 너무 잘 먹어서 다음에는 좀 더 나를 신뢰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오늘은 매일 관심을 끌어보려던 인간=나를 인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왔다.

분명히 그 아파트 동에 돌봐주는 사람이 있는데, 오늘은 냥냥 거리며 계속 다가오는 걸로 봐서는 배가 고팠던 것 같기도 하고.

연세에 비해 갑자기 너무 많이 드셔서😸 다음에 꼭 다시 마주쳐야 안심이 될 것 같다. 탈나진 않을런지...



어떤 것이든 간에 혼자 이유를 가지고, 타 생명과 접촉을 최소화하며 신뢰 관계를 쉽게 쌓지 않는 모양새에서 뭔가 내 모습을 발견하는 듯 하여 마음이 더 쓰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