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아침을 잘 안 먹는다.
그리고 뷔페식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가져와서 먹는 것도 안 좋아하기 때문에, '호텔 조식'도 그닥 달갑진 않다.
하지만 파리를 다녀온 이후로 갑자기 바뀌었는데, 이상하게 종종 호텔 조식이 그립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호텔 조식'보다는 유유자적한 '조식당'이 그리운 것 같다.
한국 사람은 아침식사를 너무너무 중시하기 때문에 조식을 심각할 정도로 열심히 먹는다.
(유학 좀 다녀오거나 해외에서 얼마간 산 뒤에, 자기는 거기에 안 속한다는 듯이 "한국 사람들은 말야~~"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 제일 웃기긴 하지만...)
서양을 봐도 아침 식사는 간단한 편이고
중국/대만 드라마를 봐도 아침을 집에서 만들지 않고 주로 밖에서 사먹는다. 두유나 가벼운 밀가루 튀김? 혹은 콘지 정도로 아침을 먹는다. 중국 유학생이 한국에 와서 신기해하는 것중 하나가 '아침부터 밥과 국 반찬까지 푸짐하게 먹는 것'이라고 해서, 그걸 들은 나도 더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동아시아는 다 비슷하리라 생각했는데 한국처럼 아침 먹는 데 열성적인 나라는 많이 없는 것이었다.
파리 여행 때 오랜만에 만난, 프랑스에 오래 산 친구는 거기 사람들이 아침을 간소하게 먹는 것에 대해 차차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저녁을 그렇게 늦게까지 거하게 먹는데, 몇 시간 안 지나 눈 뜨고 나서 뭐가 더 들어가겠어?"
원래 아침식사를 중시하는 한국 분위기에다가, 무엇을 해도 경쟁적으로 열심히 하는 한국 사람의 특징이 (이것도 프랑스에 오래 살고 난 뒤 친구가 한국인에 대해 새삼 느낀 점을 이야기해준 거, "한국사람들은 뭐든지 열심히 한다") 더해져서 한국 호텔의 조식당은 평화롭지가 않다. 한국 호텔 조식당에는 뭔가 묘하게 전투적인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어딜 가도 줄이 늘어선다. 게다가 한국 호텔이 유럽식으로 과일/빵/씨리얼/햄 몇개 늘어놓았다가는 소위 '인플루언서'들의 악평을 피해갈 수 없으므로 꽤나 많은 종류의 음식을 늘어놓게 되는데, 그게 더 사람들의 전투력을 키우는 것 같다. "될 수 있는대로 모든 걸 다 건드려보고 가리라" 💪👾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한국 블로거들의 호텔 후기 상당수가 방 구조&상태편/조식편 두 가지로 나뉘어 포스팅되어 있다는 것만 봐도 한국인에게 조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조식과 라운지는요, 다음 포스팅에 자세히 소개할게요~~") 호텔 체크인으로부터 체크아웃 사이, 그 중후반대 시간에 배치된 가장 중요한 '이 행사'에 다들 진지하게 참여하는 것이다.
역시 굉장히 구성이 다채롭고 양이 많다는 동남아쪽 특급 호텔 조식은 먹어보지 못해서, 거기에도 이런 전투적인 분위기가 있는지 비교해볼 수 없는 게 아쉽다.
파리 호텔에서 종류도 변변치 않은 조식을 그닥 흥미없다는 듯이 대충 먹고 일어서는 사람들을 보니 그게 상대적으로 더 평화롭게 다가왔었나보다. 요즘 종종 몇몇 호텔의 그 나른한 아침 분위기가 그립다. 이상하네.
웃겨.
며칠 갔다와서는
'거기는 말이야~' '한국이랑은 달라서 말이야~' 이런 말 하는 거 제일 유치한데, 나도 결국 그런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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