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내 뜻대로 안 될 때

 


영어를 사용하면서 해야 하는 part-time 일이 있는데, 4년 전에는 거절했다가 "솔직히 대단한 영어 실력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라는 말을 듣고 수락하고 결국은 했었다. 실제로 대단한 실력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돌발 상황에 닥치면 이걸 뭐라고 영어로 해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아서 한계도 많이 느꼈던 일이었다.


이번에는 좀 더 손쉽게 수락을 했는데 실제로 대단한 실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난 5-6월에 프랑스에서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 했는데(프랑스어를 할 수 없으니) 생각 외로 필요했던 말은 잘 할 수 있었기에 약간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일이 닥치자, 시제는 과거형과 미래형이 꼬여서 나오기 일쑤였고 일상적인 단어들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끔 누군가가 TV 같은 데서 영어 하는 것을 볼 때 ' 저 사람은 영어에 그리 익숙한 사람은 아니구나' 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던 'be동사+ 동사' 동시에 튀어나오기 (쉬운 예로 I am woke up 같은) 를 내 자신이 하고 있었다.


그나마 영어로 된 글은 종종 읽지만, 평소에 말로 잘 하지 않던 영어 실력을 제대로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해외 여행을 하게 되면 1주일쯤 지났을 때 상황에 익숙해져서 말을 훨씬 더 잘 하게 된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에선 2주차에도 실력은 제자리였다. 사실상 여행 때보다도 영어를 하루 종일 쓸 일이 더 많았는데도... 😔


게다가 나이 들어서 배운 외국어로서의 영어와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모국어처럼 익힌 영어의 차이는 명백히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더 느낀다. 어떻게 보면 매우 유창한 것 같은데도 단어 사용 같은 것이 확실히 차이 나는 지점이 있다.





 그 유명한 박진영의 '비닐 바지'를 보고 놀란 GOT7 잭슨 사진을 올린 박진영의 글.

홍콩 출신의 잭슨은 본인 소셜 미디어에서 그 바지를 'plastic'바지라고 칭했지만, 일견 영어가 유창한 듯 보였던 박진영은 vinyl clothes 라는 말을 쓰고 있다. Bing 검색 엔진에  JYP pla....까지만 입력하면 jyp plastic pants, jyp plastic trousers 라는 단어가 자동 완성되면서 그 사진이 숱하게 뜨지만 jyp vinyl...이란 말은 없다. Bing보다는 한국인의 사용이 잦은 구글에선 jyp vinyl pants가 연관검색어로 존재하지만 실제로 검색되어 나오는 내용엔 모두 plastic pants라고 써있다. 영어를 잘 하는 것 같은 박진영이지만 역시 나이 들어서 배운 한국식 영어를 쓴다는 것이 티가 나는 것이다. vinyl clothes라는 단어가 안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박진영이 입은 의상은 차라리 'clear vinyl'이라고 해야 하고, plastic으로 검색해야 우리가 생각하는 '투명한 비닐' 옷들이 더 많이 나온다.

매우 기초적인 영어지만, 외국에 가서 우리가 생각하는 '비닐 봉지'를 얻기 위해서는 plastic bag을 달라고 해야 한다.


최근에도 어떤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영어를 매우 현실감있게 구사하는 코미디언이 있어서 그의 경력이 궁금했는데, 외국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성대모사에 뛰어난 코미디언 중에 외국어도 굉장히 잘 흉내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대체 흉내로 하는 영어인 건지 외국 생활에서 습득한 영어인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한 단어에서 '이 사람은 그저 억양을 뛰어나게 흉내내는 사람이구나' 하는 걸 알았다. 바로 hip. 다른 코미디언이 옷을 자랑하려고 뒤로 돌아서 카메라에 엉덩이를 들이대자 그 코미디언이 'wow! this is the definition of hip!' 라고 했는데, 영어로 hip은 허리 아래쪽 양옆부분으로 고관절에 더 가까운, 뒷모습과는 상관이 없는 부위다. 즉, 그는 한국產 영어를 쓰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 코미디언이 'butt' 같은 단어를 썼더라면 난 아직까지도 그가 외국에서 영어를 익힌 사람인지 뛰어난 복사기(?)인지 궁금해하고 있었을 텐데, 한 단어로 인해 정말 뛰어나게 흉내를 내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나이가 들어서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외국어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머리 속에서 한국어 -> 외국어로 바꾸는 과정을 거치기에 (비닐 -> vinyl 🙇‍♀️ 엉덩이 -> hip? )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나도 최근에 일하면서 결국 내가 생각하는 한국어 뜻을 적절히 표현할 영어 번역 과정조차 머리 속에서 원활하지 않아서 어벙하게 대처하는 일이 많았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결국 끝없이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외국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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