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고양이.
은둔처 앞에 몇 개 놓여있는 밥그릇의 수로 봐서는
나처럼 뭔가 애처로움을 느끼는 여러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고양이같지만 (내가 굳이 신경 안 써도 챙겨주는 다른 이도 많다는 뜻) 그래도 늘 같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만나기가 쉬워서 핫팩을 하나 놓아 줄까 하고 집을 나섰다.
맛있는 거 안 줬더니 최근에는 맛있는 거 갖고 가도 뚱하니 안 나와서 섭섭하게 만들더니, 오늘은 또 무슨 이유인지 밖으로 나와서 아옹아옹거리며 나를 부른다.
내가 기억하는 한 최고로 멀리까지 나를 따라왔다. 그래도 또 가까이 가려하면 저렇게 뒷모습을 보이며 도망간다. 계속 아옹거리기는 한다.
쓰담쓰담과 궁디팡팡을 좋아하는 동네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손을 뻗치면 도망가는 고양이라서 휴지로 감싼 핫팩을 은둔처 자리로 휙 던졌는데 너무 깊이 던졌는지 돌무더기 사이로 보이지도 않고, 건물 아래쪽 깊은 곳이라 다시 꺼낼 수도 없다. 😔😬
"저거 따뜻한 거야."
'뭔지 모르겠지. 😣 밤에 저거라도 끼고 있으면 될 텐데..'
무슨 이유에선지, 오늘은 배가 고픈 건지 계속 내 근처를 맴돌았지만 이런 날은 또 먹을 것은 줄 게 없고 핫팩이 뭔지 이해시킬 수도 없다.
다른 고양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언어.
대체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지를 모르겠다.
아예 영어조차 한 마디 못 하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면 기분이 이럴까?!?
추운 밤에 은둔처 아래를 돌아다니다 우연히라도 뭔가 따듯한 그 물체를 발견해서 깔고 앉았으면 좋겠네.
4년 전에 제주도 PGA 대회 자봉할 때 주최측에서 나눠 준 핫팩인데 사용기한은 3년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동안 대여섯개를 전혀 안쓰고 있다가 4년이나 지났지만 혹시나 하고 뜯어서 흔들어봤더니 여전히 뜨거워지기는 한다.
워낙 근처로 가는 것도 싫어하는 냥이라 다가갈 수가 없어서 가까이로 핫팩을 휙 던졌다가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려서 어떻게 다시 꺼낼 수도 없고 너무 아깝다. 은둔처 돌무더기 사이에서 그냥 식어가겠지.
고양이는 원래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특히나 소통이 너무 어려운 기분이 드는 이 냥이. 핫팩을 발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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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낮에 가서 보니 핫팩을 어디로 던졌는지는 보인다. 하지만 그 옆에 앉아 있는 걸 보니, 밤에 이용하지는 않은 모양.
생각보다 움직임도 빠르고 잘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도, 음식을 주면 주위 사물과 구별해서 눈으로 알아채는 게 아니라 킁킁 거리며 냄새로만 판단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시력이 안 좋아서 은둔 고양이가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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