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여름에 아파트 바깥이 시끄러워 나가보니, 나무들을 무참히 베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솎아내기 정도도 아니고 가지를 몽땅 다 없애고 큰 줄기만 남겨놨다.
다음해 봄, 마치 죽어버린 것처럼 보였던 나무 줄기에서도 꽃이 피어났다. 잔인한 살해(?) 현장에서 그래도 너는 살아가는구나.
생명이란 참 신기하다.
또 1년이 지나 봄이 되니, 이번에는 가지가 정말 많아졌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한편으론 "꽃"의 위력을 알게 됐다.
그동안 "호텔 숙박의 꽃은 조식이죠" "ㅇㅇㅇ의 꽃은 ooo 아니겠어요?" 이런 식의 표현에 그다지 공감을 하지 못했다. 대체 꽃이 뭐길래...🤷
하지만 이렇게 꽃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나니, 이 수많은 가지들은 어제 뿅 하고 나타난 게 아니라 1년 내내 자라나고 있었던 것임을 알아차리게 됐다. 그동안 이 나무 앞을 수없이 지나다니면서도 이렇게 가지가 자라나고 있다는 걸 한 번도 보지 않았었는데, 봄이 되어 마침내 꽃이 피어나니까 그제야 시선이 가는 거였다. 그래서 ㅇㅇㅇ의 꽃은 ㅇㅇㅇ죠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이었구나. 1년 중에 단 한 때, 이 나무가 주목받는 시기. 중심.
잘라내고 베어내도 여전히 힘차게 살아가는 생명의 힘을 새삼 목격하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생명의 소멸을 확인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나무가 서 있는 길을 지나 특정 아파트 동으로 가면, 내가 여기에 종종 글을 쓰곤 했던 '은둔 고양이'의 거처가 있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안 보인지 시간이 꽤 흘렀다. 열 살 정도는 된 노령 고양이이니 길고양이로서는 오래 산 거지만, 한편으로는 그 고양이가 내가 다가오는 것을 허락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이제 영영 못 보는 건가 해서 아쉽다. 마지막으로 본 날, 내 손에 쥔 먹을 것을 툭 치는 활력을 보여줘서 더 오래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진짜 마지막 모습이었던 걸까. 영하 16도, 추운 겨울도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견뎌냈는데 왜 봄이 오니 보이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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