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입장이 되기란...



14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스리랑카 제자가 지금 한국에 왔다고 한다. "유학"왔다고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느낌상 '단기 연수'인 것 같기도 하고. 한국어가 아주 매끄럽진 않아서 소통은 잘 안 된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된 거 같은데, 연락이 늦은 이유는 생각보다 날씨가 추워 좀 아팠다고 한다. 한 번 만나야겠다 싶었다. 우리집에는 언니가 입지 않는 옷들이 아주 많은데 (이건 농담 아니고 진짜 500벌 정도는 있을 것 같다. 꽁칫꽁칫 언니 방 옷장에 한 번도 빛을 못 본 옷들이 구겨들어가 있고, 그 옷장이 넘쳐서 언니 방 옷장이 안방에도 가 있다.) 언니에게 부탁해 좀 도톰한 스웨터 두 벌도 받아서 건네 줄 계획을 세웠다. 

이번 주 중반까지는 날씨가 아주 춥진 않을 것 같아서 만나자고 연락을 해보니, 자기는 혼자서 외출 하기가 어려우니 친구 4명이 있는데 같이 가도 되냐고 한다. @.@
밥도 사주고, 옷도 따로 건네주고픈데 그렇게 친구가 많으면 안 되지... 그래서 "혼자 외출할 수 있게 되면 만나자" 라는 답을 보냈다.

아니... 한국 온 지 두 달인데 아직도 혼자 못 다녀?!?! 
내가 2009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만났던 씩씩한 제자들을 생각했다. 20대 초반에 겨우 2,3년 배운 언어를 가지고 한국 유학 생활에 부딪히던 아이들. 

그러고 보니 14년이 지났다.
나만 늙은 게 아니고 내 제자들도 나이가 들었다. 그렇다면 그 제자도 30대 중반이잖아? 제자라니까 늘 아기 같은 느낌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들도 이젠 어른이었다. 그런데 무서워서 혼자 외출을 못한다고?? 스리랑카랑 비교도 안 되게 대중교통 잘 되어 있고 안전한 한국에서?? 그리고 지금 내가 중동 같은 데 뚝 떨어져서 아랍어 표지판도 못 읽고 말도 안 통해서 외출을 못 하는..그런 상태도 아니고, 15년 공부한 언어가 통하는 나라에 온 건데도? 답답하네.

처음에는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친구의 입장도 되어봐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아는 한에서 그 제자는 연수 프로그램 같은 데 뽑혀서 해외에 나간 적이 없고... 아마 이번이 30여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리랑카 섬 밖으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게 낯설고 두렵고 할 수도 있지.
그래도 두어 달 동안 몇 번 시도라도 해봤으면 지금쯤은 서울 안을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ㅜㅜ 안타깝긴 하다.

정 만나고 싶으면 내가 학교 근처로 찾아가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 학교가 우리 집에서 좀 멀어서 서로 중간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못 나온다고 하니... 

그리고 솔직히... 이렇게 공부하러 온 30대 중반 제자를 세상 밖으로 더 끌어내고 싶지, 내가 우쭈쭈 학교 앞으로 찾아가고 싶지는 않네. "너를 도와주기 싫은 게 아냐. 니가 스스로 했으면 좋겠는 거지" 
....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나에게서 꼰대의 향기가 풀풀 난다.


갑자기 또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그 제자에 대해 '30살 넘어서 혼자 저것도 못해?' 라고 생각했다면, 다른 누군가 역시 나에 대해 '40대에 아직 저러고 살아?' 라고 나이로 사람을 규정짓는 행위를 하고 있겠지 싶다. 
두 달 동안 저렇게 아무 것도 시도를 안 했다니, 혹은 '그동안은 친구랑 다녔지만 이번에는 혼자 가볼게요' 라고 하지 않으니 내가 도와주고 싶지가 않네..라는 생각이 쉽게 드는데, 그와 똑같은 이유로 남들이 날 안 도와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소극적으로 지내는 거 꼴보기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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