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 살기 전에 스리랑카 문자 - සිංසල싱할러를 배우고 가서 조금 읽고 쓸 줄은 알았지만 사실 2년 살면서 말을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영국 식민지를 거친 곳이라 영어도 잘 통했고 (현지인들 영어 자부심 강하다), 한국어 교사였으니 학생들이랑은 한국어 하면 되고, 날 도와줄 학생도 많고.
그나마 썼던 것은 숫자인데 (교통 수단 흥정에 필요) 귀국 후 정말 다 까먹었다.
귀국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뒤로 이상하게 외국 여행을 갔다가 말문이 막혀 단어가 안 떠오르면 머리 속에 스리랑카 단어 몇 개가 먼저 맴돌곤 했다. 물론 실제로 입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특히 메떠닝 මෙතනින් 같은 거. 정작 스리랑카 살 때는 내 입 밖으로 한 번도 안 내본 단어인데. 🤷♀️
මෙතනින්은 여기에서 여기서..뭐 그런 의미인데 랑카에선 here면 통하니까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외국에 있을 때 이런 의미의 단어를 말해야 될 때 이상하게 메떠닝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웃겨. 내가 스리랑카 말을 잘 구사했던 것도 아니고, 거기선 아무도 못 알아들을 텐데. 실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단어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외국땅에서 갑자기 떠오른다는 게 진짜 이상함.
그나마 랑카에서 실제로 좀 썼던 것 중에는 පුලුවන්ද?가 있는데, 할 수 있어요? 이거 돼요? 이런 의미인데, 이 문장 역시 전혀 관련 없는 다른 나라에서 이런 문장을 써야 할 경우에 뜬금 머리 속에서 먼저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그 외에도 몇 개 더 있는데 (외국에서 어떤 단어를 말해야 되는데 이상하게 먼저 머리 속에서 치고 나오던 싱할러 단어) 지금은 안 떠오르지만 나중에 생각나면 추가해야지. 가끔 어느 나라에서나 "너 우리나라 말 할 줄 알아?"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머리 속에서 "조금 할 줄 알아"라고 대답하기 위해 항상 චුඩ්ඩක් (스리랑카어로 "조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웃기다. 이것은 아마 실제로 스리랑카에서도 내가 많이 썼던 말이기 때문일 듯도 하다. 항상 "조금 할 줄 알아"라고 대답했으니까. ඔක්කොම가 "모두, 다" 라는 뜻인데, 귀국한지 얼마 안 됐을 때 한국에서도 '이거 다 주세요' 이런 거 말할 때 ඔක්කොම를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래 전에 nate 검색 엔진에서 "시맨틱 검색" 이란 걸 도입한 적이 있었다. 단어 하나 입력하면 그 단어의 정의 & 뭐뭐 & 뭐뭐뭐 를 차례로 보여주는 형식이었는데, 그렇게 정교하지는 않아서 어떤 단어 다음에 "은/는"이 들어가면 그 다음 문장이 그 단어의 정의인 걸로 나오곤 했다. 즉 "한국어는 대한민국의 공용어이다." 이런 식으로 정의를 설명하는 문장에는 "는"이 포함된다는 점을 이용하는 듯하다.
그런데... 한동안 네이트 검색에 "싱할러"를 입력하면 내 싸이월드 블로그의 한 문장이 "싱할러"의 정의라고 첫번째로 나왔었다. 😄
싱할러의 정의 -> 싱할러는 진정 내 마음 속에 있는 거죠.
ㅋㅋㅋ 나? 싱할러의 정의를 내려버린 사람.
스리랑카에서 수술 받았을 때 마취에서 깨어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이 "වේලාව කීයද?" 스리랑카어였다는 내용이었는데, 이게 '싱할러의 정의'로 검색에 걸려나올 줄이야...
싱할러는 진정 내 마음 속에 있었나보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진정 내 마음 속에 있는 거죠"는 한동안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행어였다. 철지난 시대상도 반영하고 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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