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t in translation






그동안 스페인 출신 선수를 응원해왔으니
내가 그의 인터뷰나 활동 등을 접하는 통로는 그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된 인터뷰, 혹은 영어 자막 뿐이었다.

요즘 해외에서 인기 많은 한국인들이 등장하는 콘텐츠를 보고 있노라니... 한국어로 말한 내용을 외국인들이 영어 자막으로 보고 "oh oh so cute!" "Oh I'm touched 🥲 "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트윗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한국인만이 알 수 있는 재미나, 뉘앙스, 그 배경 등이 엄청 다른데 자막이 전달하는 게 꽤 한정적이며 외국인의 감상이 가끔은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예시)

🇰🇷 한국인이 한 말 : 이 세상에 뭐 안 힘든 '' 있습니까?
('놈' 단어 사용 때문에 옆에 있던 어린 멤버들이 제작진 눈치를 보는 걸로 보임)

🇬🇧 영어 자막 : "Who is not tired here?" - 여기에 안 힘든 사람 있습니까?
(영어 댓글 - 그들이 힘든 스케줄을 은연중 토로한 것이며 그래서 here,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과 눈빛 교환 하는 것)


😛


한국어를 알아들으면 어떤 의미인지 알아서 웃고 마는 상황인데, 살짝 다르게 번역된 영어 자막을 가지고 영어로 옥신각신 다투고 싸우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고 있노라니...아무리 공통의 정서라는 게 있다고 해도 '외국어' 번역이 100% 같은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온 나달에 대한 어떤 상/이미지는 그냥 미디어에 의해 2차 가공과정을 통해 받아들인 것이었구나...같은 느낌. 🫠 뭔가 허무해짐.

난 그의 모국어 인터뷰도 알아들을 수 없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 인터뷰라고 해도 그 사람 자체가 100% 편하게 구사하는 언어가 아니라서 그 사람을 담아내지 못 하고, 나도 뉘앙스 모르고.
그냥 뭔가 '한 단계'를 거친 또다른 어떤 '상'을 좋아해온 것이구나..하고 새삼 느낌. 

나같은 '옛날' 사람은.... 요즘 한국 문화의 해외 인기가 정말 놀라울 정도. 
한국 유명인이 한 말이 (내가 들은 것에 비해) 굉장히 압축되고 생략된 자막 몇 줄로 전해지는데도 그저 감동하고 재미있어하는 해외 팬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거 아닌데, 그것보다 완전 더 웃긴 건데 아 이걸 모르네. 안타깝...🥺' 하기도 하다. 약간은 '우리 한국인 부럽지?' 싶기도 하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외국인들을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겠구나,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중간에 무언가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를 좋아하거나 미워하고 있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어는 대학교 교양 시간에 배운 게 전부라서 제대로 된 이해가 불가능하고, 가끔 나달의 스페인어 인터뷰를 번역기를 통해서 보면 영어 인터뷰보다 내용이 더 깊어서 자세히 알아보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그 정도로 열정적이지는 않아서🫤 추가로 더 공부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알던 나달과 스페인어를 말하는 나달은 좀 다른 사람일 수도... 



"Yo siempre he hecho mi camino..."

거의 안 하지만 예전에 굳이 나달의 스페인어 인터뷰를 찾아봤을 때 발견해서 맘에 들었던 표현. 2019년 US open 우승 후 인터뷰로 기억하는데, 내가 찾아 본 건 그보다 한참 뒤. 
스페인어는 스페인어만의 맛이 또 있구나 생각함.
사진은 나달이 2022년에 바닷가에서 홀로 걸어가는 거북이 사진을 찍어서 올렸던 것인데, 인터뷰 내용과 어울리는 듯해서 덧붙였다.






결론: 자막 만드는 일을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다른 기억을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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